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달 전화선 / 이승예

폴래폴래 2017. 10. 18. 12:10




       2017 제5회 발견 작품상 수상




        달 전화선



                            -이승예


 아들이 물에 빠져 죽고 졸수(卒壽) 노모는 자리에 누웠다

 한 이틀 들깨죽을 쒀서 찾아가도 영 수저를 들지 않는다

 모 아니면 도

 수를 쓴다


 아짐!

 인나서 죽 잡수믄 아들이랑 통화 시켜드리께


 기운도 없는 양반이 눈 속 지구를 움직여 나를 본다


 먼 소리여?

 아들은 죽었어


 네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죽은 사람이랑 통화가 된대요

 어떤 몽골 시인이 달 전화기를 만들었대요

 근데

 저쪽하고 이쪽이 하도 멀어서 목소리가 커야 헌대니께 언능 죽부터 잡숴요


 전화는 언제 와?

 저녁에 달뜨면 그때요

 과연 초이레 달이 떴다


 하늘이 돕는지 훼방 하는지

 맑은 바람 휑하니 지나가고 시름이 깊은 허공에 달은 전화기 모양으로 척 놓였다


 노인에게 가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온갖 거짓말 지나가고

 비나 올 것이지 천둥이나 칠 것이지

 그러다가 쌩뚱맞게 첫사랑 머시마도 횅 지나가고 흰 머리카락 쭈뼛 서고


 노인의 방문을 삐걱 열고 들여다보니

 문틈으로 달빛이 빈 죽 그릇 사이로 뻗쳤는데

 신음인지 잠꼬대인지

 나도 가자, 나도 가자, 같이 가자

 소리보다 얇은 눈물 한줄기가 달빛을 타고 귓속으로 흘러든다


 모도 도도 아닌 졸수!



 수상시집<나이스 데이>발견,2017 수록시




『발견』2017년 겨울호




 -1963년 순천 출생. 2015년<발견>으로 등단. 시집<나이스 데이>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역을 밟았기 때문이다 / 정지우  (0) 2017.11.01
가로세로높이를 가진 메모 / 최호빈  (0) 2017.11.01
달과 나무 아래에서 / 신영배  (0) 2017.10.18
몽상 /신영배  (0) 2017.10.18
빈곳 -배한봉  (0) 2017.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