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북양항로 / 오세영

폴래폴래 2017. 7. 5. 11:07






       북양항로(北洋航路)


                                        

                                               -오세영


엄동설한,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문득

 극지를 항해하는

 밤바다의 선박을 생각한다.

 연료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화실(火室)에서 석탄을 태우는

 이 배의 일개 늙은 화부(火夫).

 낡은 증기선 한 척을 끌고

 막막한 시간의 파도를 거슬러

 예까지 왔다.

 밖은 눈보라.

 아직 실내는 온기를 잃지 않았지만

 출항의 설렘은 이미 가신 지 오래,

 목적지 미상,

 항로는 이탈,

 믿을 건 오직 북극성, 십자성,

 벽에 매달린 십자가 아래서

 어긋난 해도(海圖) 한 장을 손에 들고

 난로의 불빛에 비춰 보는 눈은 어두운데

 가느다란 흰 연기를 화통(火筒)으로 내어 뿜으며

 북양항로,

 얼어붙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삶은

 흔들리는 오두막 한 채.



 시집『북양항로』2017. 민음사.



 -1965~68년 <현대문학>통해 등단. 시집<바람의 아들들>

  <별밭의 파도소리>등. 학술서<시론><한국현대시인연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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