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양항로(北洋航路)
-오세영
엄동설한,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문득
극지를 항해하는
밤바다의 선박을 생각한다.
연료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화실(火室)에서 석탄을 태우는
이 배의 일개 늙은 화부(火夫).
낡은 증기선 한 척을 끌고
막막한 시간의 파도를 거슬러
예까지 왔다.
밖은 눈보라.
아직 실내는 온기를 잃지 않았지만
출항의 설렘은 이미 가신 지 오래,
목적지 미상,
항로는 이탈,
믿을 건 오직 북극성, 십자성,
벽에 매달린 십자가 아래서
어긋난 해도(海圖) 한 장을 손에 들고
난로의 불빛에 비춰 보는 눈은 어두운데
가느다란 흰 연기를 화통(火筒)으로 내어 뿜으며
북양항로,
얼어붙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삶은
흔들리는 오두막 한 채.
시집『북양항로』2017. 민음사.
-1965~68년 <현대문학>통해 등단. 시집<바람의 아들들>
<별밭의 파도소리>등. 학술서<시론><한국현대시인연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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