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박정대
걸어서 악양에 도착했더란다
악양사월엔 바람도 많더라
한산 세모시 같은 바람이 무성한 대숲을 웅성웅성 지나오더라
잘 빚은 질그릇 같은 악양엔 푸른 볏잎들만 들판 가득 출렁이더라
악양사월엔 푸르디푸른 가슴들도 딱딱한 땅에서 태어나더라
그래도는 풀잎은 풀잎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낄낄대며 깔깔대며 바람에
잘도 흔들리더라
악양사월엔 살구나무 가지처럼 근심 많은 나 어느 산 틈에도 깃들지 못
하고 평사리 하얀 강물 위로 속절없는 보름달로나 뜨더라
사랑하라 슬퍼하라, 경리 선생의 말씀만 한 마리 울음처럼 들려오는 악
양사월의 마지막 밤
술에 대취한 나는 걸어서 그렇게 악양을 지나왔더란다
『서정시학』2017년 여름호
-1990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단편들><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아무르 기타><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삶이라는 직업><모든 가능성의 거리><체 게바라 만세><그녀에서 영원까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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