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악양 / 박정대

폴래폴래 2017. 6. 26. 11:37





                악양


                                          -박정대



  걸어서 악양에 도착했더란다


  악양사월엔 바람도 많더라


  한산 세모시 같은 바람이 무성한 대숲을 웅성웅성 지나오더라


  잘 빚은 질그릇 같은 악양엔 푸른 볏잎들만 들판 가득 출렁이더라


  악양사월엔 푸르디푸른 가슴들도 딱딱한 땅에서 태어나더라


  그래도는 풀잎은 풀잎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낄낄대며 깔깔대며 바람에

잘도 흔들리더라


  악양사월엔 살구나무 가지처럼 근심 많은 나 어느 산 틈에도 깃들지 못

하고 평사리 하얀 강물 위로 속절없는 보름달로나 뜨더라


  사랑하라 슬퍼하라, 경리 선생의 말씀만 한 마리 울음처럼 들려오는 악

양사월의 마지막 밤


  술에 대취한 나는 걸어서 그렇게 악양을 지나왔더란다




  『서정시학』2017년 여름호




  -1990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단편들><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아무르 기타><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삶이라는 직업><모든 가능성의 거리><체 게바라 만세><그녀에서 영원까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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