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 김지희
그때 메말랐던 내 눈을 당신 눈빛으로 적셔 주었지
그랬었지. 내 불꺼진 손바닥에 끼워둔 털장갑,
기쁘고 슬픈 표정까지
모두 당신 따스한 눈빛으로 만들어졌지
눈보라가 야수처럼 울부짖는 저녁
거리는 눈으로 차 있고
당신 더운 숨소리, 그 온기 가득한 손길도 얼어붙은
십이월
마른가지에 걸린 앙상한 계절 저쪽에서
당신 얼굴을 보았어
수은등 불빛도 얼어붙은 길 위로
어둠이 따라오는 소리
내 심장이 물보라 되어 떨어져 내릴 듯
세상 천개의 추위를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당신의 가슴
한 슬픔을 무너뜨리는 깊은 바람소리
하, 저 눈보라
불꽃보다 선명한 입술, 부드러운 눈빛 모두가
당신 심장마저도 얼어
희뿌연 눈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서로 뜨겁게 언 손 감싼 물방울 된다면
폭설처럼 늙어가는 길목마다
하얀 꽃송이 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거야
얼어붙은 거리 지나
안개꽃 닮은 당신 천개의 눈빛으로 내 심장 덮을거야
『시와 문화』2015년 겨울호
-2006년<사람의문학>으로 등단. 2014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작가회의 회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소들 / 하재연 (0) | 2015.12.28 |
---|---|
베스킨라빈스 / 김재근 (0) | 2015.12.25 |
푸른 하늘 은하수 / 한세정 (0) | 2015.12.24 |
사과 근처 / 서안나 (0) | 2015.12.24 |
바다의 아코디언 / 김명인 (0) | 2015.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