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푸른 하늘 은하수 / 한세정

폴래폴래 2015. 12. 24. 20:03

 

 

 

 

 

 

                 푸른 하늘 은하수

 

 

                                                             - 한세정

 

 

     포대기에 싸인 어린 아이가

     등 뒤에서 칭얼거렸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여자는 목이 잠길 때까지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불렀다

     오토바이 사고를 낸 남편을 만나러

     경찰서에 가는 길이였다

 

     으스러진 무릎으로 남편은

     평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무릎이 으스러지도록

     김장 무를 다듬듯 여자는

     아이들의 몸뚱어리를 닦아 내렸다

     용수철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가 간혹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행간(行間) 너머 많은 밤들이

     귀섶을 하얗게 메워갔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국의 해변가에서

     난생 처음 여자는 여행 가방을 풀었다

     고요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네모난 창틀 안에 담겨 있었다

 

     온종일 바다만 바라보는

     여자의 조그만 등을

     햇살이 쓸어주고 있었다

     다 자란 아이들의 그림자가

     침대 한켠에 드리워져 있었다

     등 뒤의 어린 아이가 비로소

     엄마의 엄마가 되는 시간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손주들이

     천체망원경으로 은하수를 보겠다고

     잔뜩 들뜬 어느 날이었다

 

 

 

      『시와 문화』2015년 겨울호.

 

 

 

       -서울 출생.200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입술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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