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아홉 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 / 박연준

폴래폴래 2014. 10. 23. 14:23

 

 

 

 

          사진:산술벗님 사진 감사합니다.

 

 

 

  아홉 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

 

                                               - 박연준

 

 실연에 실패한 자가 걸어가고 있다

 북을 치던 손은 가고 흔들림만 남았다

 

 승리한 거울들이 돌아눕는다

 일렬종대

 별들의 함성

 함몰된 얼굴에서 일어나는 빛의 산란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

 자지러지는 거울들

 복에 겨워 죽을 것 같다

 자지러지는 거울들

 

 아무래도 지금은 계절이 번복되는 시절

 수천 송이 연(蓮)들이

 몽우리 째 수장(水葬)되는 밤

 떠오르지 못하도록 부력을 삼키는 입술들

 열두 개의 머리가 가라앉는 하나의 몸통을 견디고

 물의 허를 찌르며 깨진 것들이 태어난다

 두렵다

 아홉 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는데

 

 대관절

 아름답게 죽은 별이란 게 무슨 소용일까?

 살아나면 어쩌지

 이 많은 생의 궁극들, 꿈에서라도

 피어나면 어쩌지

 

 밤의 이적수로 죽음에 성공한 귀신들,

 실연에 실패한 자가 언덕을 오르고 있다

 

 

 『발견』2014년 여름호

 

 

 

 -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등단.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