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느와르 탱고 / 김재현

폴래폴래 2013. 8. 26. 15:43

 

 

 

 

 

 

 

 

    느와르 탱고

 

                                         - 김재현

 

 붉은 치마를 흔들며 도는 태양

 바람의 유쾌한 손가락이 지날 때마다

 만점(滿點)의 붉은 건반들, 나무 위에서 흔들리네

 빛 아래 모든 것, 빛의 색을 모방하며 죽어가는 것일까

 복서의 비강에서 떨어지는 코피처럼

 호주머니 속으로 뿌리를 찔러넣은 나무의

 껄렁껄렁 떨어지는 빨간 잎들

 궤도를 따라 돌며 추는 붉은 탱고

 

  지도 위의 기압선을 읽으며 풍향(風向)을 예측하듯 손금을 보면 앞으로의

방향을 알 수 있지 꾹 하고 주먹을 쥘 때마다 찍하고 새어나왔다 손금앞의

생이란 악력을 따라 미끄러지는 바람, 을 따라 핑그르르 돌아가는 풍향계

 

 별이 탄생할 때 얼마나 큰 폭발이 필요한 지 너는 알까

 그렇게 태어나고도 빛이 흐린 별을 너는 알까

 공이 치고, 팡! 하고 붉게 익은 성운에서 떠나간

 복서의 주먹이 다른 복서의 의식으로 밤을 불러오고

 이번 생애엔 오지 않을 혜성의 너무 긴 주기

 복싱의 시대는 꼬리만 남고

 아니, 모든 것이 끝난 어두컴컴한 옥탑방 위에서

 부어오른 눈두덩에 계란을 문질러주는 너에게

 필요한 거 있어? 라고 무능한 목소리로 물을 때

 

 가장 아름다운 춤은 언제나

 서로를 안타까이 비껴가는 형식이었네

 상대를 노려보던 복서의 풋워크가

 불 켜진 옥탑방 주변을 밤새도록 서성거리듯

 붉은 치마를 너풀거리는 태양빛에 취해

 지구의 호르몬이 푸르게 넘쳐흐르듯

 

 

 『시산맥』2013년 여름호

 

 

 

 

 - 1989년 경남 거창 출생. 경희대 국문과 재학 중.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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