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요리대백과
─숟가락
- 권혁웅
1
크림소스 스파게티 먹을 때 숟가락은 참 공손해요 머리채 꼬나 쥔
남편 아래서 머리 감다가 휘둘린 아내 같아요
수전증이 있으면 소용돌이를 못 그린다고 해요 손에 바이브레이터
를 달았거든요 그런데 저이는 어쩌면 저렇게 잘 말까요?
숟가락은 오목거울이어서 면을 먹다가 남편은 물구나무를 섰습니다
로프 반동처럼 아내의 등을 떠밀었겠죠?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처럼 코피가 터지는 아내, 셋을 세기 전에 숟가
락을 탁, 소리 나게 놓고 집을 나섭니다
2
남편은 밥을 비빌 때처럼 제 숟가락을 흔듭니다 제백사(除百事)라, 비
비대기치는 그 하나를 위해서
저이는 참기름 대신 땀을 흘려요 저건 고추장으로 위장한 음악입니다
남편은 속이 쓰려요 누룽지를 긁다가 솥에 구멍이 났습니다
자기 밥통을 소화시키는 밥통이라니요? 아는 거라곤 운명 교향곡 첫
소절뿐이어서, 남편은 제 그릇이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고사리처럼 진이 빠진 아내도 그릇 밖에서 표고처럼 늙어갑니다 십시
일반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하물며 도라지라니요?
시집『소문들』문지 2010
- 1967년 충주 출생. 1997년<문예중앙> 시 등단.
시집<황금나무 아래서><마징가 계보학><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현재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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