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과 소
- 황학주
눈을 들자 검푸르다 해야 할 설산이 시야를 채우며 우르릉 날았다 눈송이처럼
부서지는 별들이 다락밭에 잠든 얼굴들을 비추는 가운데
흰 소로 밭을 가는 노인의 취향대로 구불구불 산길이 벋는다 가랑눈 밟는 발로
따라나서니 입을 꾹 다문 소, 사흘 전 죽은 송아지를 낳았다는 흰 소가 한밤중 설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밤을 새는 소만큼 별을 센 적 없을 것이라는 설산의 문장을 그때 들었다
그것으로 되새김을 한다
새끼소가 어미 소 밑으로 들어가 혓바닥을 부서럭거리듯 낮은 산 몇 개 설산 밑
에서 등허리 꿈틀대면 들러붙다 떨어지는 소의 얇은 입술에 검푸른 눈물이 물린다
설산을 깎아 새긴 아기 소의 이름을 누군가 받는 것 같다
소는 설산 밑에 살뿐 산이 우르릉 나는 것엔 아랑곳없다 돋는 별 무리에 눈길을
돌리는 흰 소의 눈에 헤엄쳐 나가야 할 얼음물이 들어차는 것을 그때 보았다 검푸
른 설산도 만 년 전 어느 어머니의 저술이었을 테니까 밤새 옛 눈이 새로 피어났다
시집『某月某日의 별자리』지혜 2012년
-1954년 전남 광주 출생.세종대 영문과, 우석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1987년 시집<사람>으로 등단.
시집<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작품상, 문학청춘작품상,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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