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 송찬호
머리 위에서 터지던 사과탄은 붉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동글고 주먹만 한 회색빛 사과탄은 그 매운
최루 가스만큼이나 붉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과수원에 이르러, 우리는 쉬이 잊혔던
지난날 어떤 사소한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돌팔매처럼 먼 전선으로부터 날아왔다는 것
날아와선 꽃씨 주머니처럼 인정사정없이 터졌다는 것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아직 꽃밭이 아니어서
그걸 도로 집어던지기도 했다는 것
과수원은 사과 따기가 한창이었다
그중 어떤 건 이 계절 내내
가지에 매달려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발아래 사과 하나를 주워 들었다
대체 누가 이 사과의 핀을 뽑아버렸을까
사과는 붉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큼 붉다
사과
- 송찬호
여기 이 붉은 곳은 사과의 남쪽, 홍수의 개미들이 위태하게 건너가는
저 녹슨 철사줄은 사과의 적도, 그리고 물컹하게 썩어가는 여기 이곳이
사과의 광대뼈
이제 허리 구부러진 저 늙은 사과나무의 무릎에서 사금을 캐지 말자
탈옥의 휘파람도 불지 말자 생의 달콤함을 훔쳐 달아나던 팔월의 사과
도 저렇게 붉은 가죽 조끼 한 벌로 포박돼 가지 끝에 매달려 있으니
부카치카 부카치카…… 벌판을 달려와 허공으로 앞머리를 번쩍 쳐든
바람의 하모니카 여기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개망초 나라, 가쁜 숨을 헐
떡이며 망초대 몇 단 부러뜨려 침목으로 베고 누운 곳, 물 한 그릇 떠놓
을 성소조차 한 곳 없는 여기는 사과의 뒤편
여기쯤 파란 대문이 서 있었겠다 이 문으로 사내들은 진귀한 낙타 눈
썹을 찾아 사막으로 떠나고 얼굴 검은 여자들이 태양의 분을 바르고 십
리를 걸어 마마와 기근을 영접했겠다 그래도 여길 다시 한 번 보아라 돌
로 찧은 여뀌즙 사랑은 여전히 물고기 눈을 찌르고 갈라진 시멘트 틈에
서도 아이들은 분수처럼 솟고 그대의 어미들은 천 일의 밤을 팔아 아침
한때를 맞이하리니
시집『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학과 졸업.
1987년<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등.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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