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무화과 열매를 땄다 / 이윤학

폴래폴래 2011. 3. 4. 11:51

 

 

 

 

 

 무화과 열매를 땄다

 

                                         - 이윤학

 

 

 

 비빔국수를 먹으러 가는 길

 베어진 가로수 그루터기에 앉아

 담배를 빠는 늙수그레한 여자가 있었다

 뒤죽박죽 얹힌 박스때기들 아래

 불어터진 눈곱을 단 여자가 있었다

 

 전봇대 옆에 서서

 흘겨 뜬 눈으로 상대방을

 꼬나보는 남녀가 있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주입시키는

 남녀가 있었다 키 차이가 많이 나는

 남녀가 있었다 입가에

 침 거품이 넘치는 남녀가 있었다

 

 국수집 뒤뜰에 무화과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마리 불독이 침을 흘리고 있었다

 주름을 덜렁거리며 짖어대고 있었다

 무화과를 딴 찰나

 무화과 가지와 무화과 꼭지에

 한 방울씩 화이트 액이 맺히고 있었다

 

 

 

 

 시집『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지 2008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그림자를 마신다>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