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열매를 땄다
- 이윤학
비빔국수를 먹으러 가는 길
베어진 가로수 그루터기에 앉아
담배를 빠는 늙수그레한 여자가 있었다
뒤죽박죽 얹힌 박스때기들 아래
불어터진 눈곱을 단 여자가 있었다
전봇대 옆에 서서
흘겨 뜬 눈으로 상대방을
꼬나보는 남녀가 있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주입시키는
남녀가 있었다 키 차이가 많이 나는
남녀가 있었다 입가에
침 거품이 넘치는 남녀가 있었다
국수집 뒤뜰에 무화과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마리 불독이 침을 흘리고 있었다
주름을 덜렁거리며 짖어대고 있었다
무화과를 딴 찰나
무화과 가지와 무화과 꼭지에
한 방울씩 화이트 액이 맺히고 있었다
시집『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지 2008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그림자를 마신다>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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