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平生圖 / 조용미

폴래폴래 2010. 10. 12. 12:12

 

 

 

 

 

  平生圖

 

                              - 조용미  

 

 

 

 싸르륵싸르륵

 마당에 달빛이 하얗게 내려앉는 밤

 가만히 앉아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하얀 속적삼과 쪽진 머리

 붉은 비단이불,

 띠살문의 창호지 안으로 서리어오는 달빛은

 

 알 수 없는 기다림이다

 

 꼿꼿한 앉음새로 숨을 고른다

 달빛이 차곡차곡 쌓이는 뜰

 뒤곁 대숲을 한 줄 바람이 휙 긋고 지나가고 있다

 

 마당에 누가 도착했다

 

 천천히 열리는 문,

 눈을 감고 있다

 달빛에 눈을 다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긴 목은 달빛보다 희다

 

 번쩍 무언가 허공으로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비단이불의 하얀 홑청 위로

 붉은 꽃이 화르르륵 피어났다

 

 고독한 눈빛을 지닌 검객의 얼굴은 가려져 있다

 

 붉은 꽃을 가득 움켜쥐고 있는 여인은

 어쩌면 그 얼굴을 알고 있다

 그는 흰 눈보다 더 눈부신 붉은 꽃을 피웠다

 

 알 수 없는, 오랜 기다림이 완성되었다

 

 꽃이 피었다 붉은 꽃은

 흰 홑청 위에 핀 붉은 꽃은

 달빛을 받아 차갑다

 

 몇 번이나 生을 닦아야 흰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시집『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지 2007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일만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2005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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