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죽선 / 허영숙

폴래폴래 2010. 9. 24. 11:05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죽선

 

                             - 허영숙  

 

 

 

 속없이 보여도 저미면 뼈가 여럿입니다

 뼈와 뼈를 선지(扇紙)로 묶으면 서늘한 숲이 생기지요

 한여름의 폭염

 그 후방에 나 앉아 포개진 댓살을 펼쳐 흔들면

 숲에서 찬바람이 일제히 몰려오는 것인지

 허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요한 듯 보여도 수많은 바람이 살고 있지요

 댓살을 흔들 때 흩어지거나 포개지면서

 대 안에 숨은 서늘한 그늘을 베껴내며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인데

 댓살이 차고 시원한 바람을 몰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고비를 넘을 때마다

 마디 속에 생긴 그늘 때문이지요

 마디는 다시 한 생애를 밀어올리고

 곧은 생애에 또 한 마디가 자라나고

 그늘은 그때 생겨나 댓살에 스미지요

 밀려나면 또 다시 몰아오고

 빙글빙글 바람을 돌리는 댓살 속에

 고비도 없이 한 시절 그럭저럭 고요하게 건너가는

 나의 지루한 문양을 그려 넣으면

 바람을 접고 또 접어 내 어깨를 후려쳐 줄까요

 

 

 

 

  『시와시학』2010년 가을호

 

 

 

 

 

  - 경북 포항 출생. 부산여대 졸업.

     2006년<시안> 등단

     시집<바코드> 2010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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