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노천 탁자의 기억 / 신원철

폴래폴래 2010. 9. 17. 11:10

 

 

  사진:네이버포토

 

 

 

  노천 탁자의 기억

 

                                       - 신원철 

 

 

 

 분교 캠퍼스의 퇴근버스는

 시장끼를 가득 싣고 동대문운동장에 도착했었다

 어김없이 흥인시장 구멍가게 앞에 판을 벌이고

 깡통쇠고기장조림, 깡통마늘, 깡통번데기, 깡통완두콩

 4홉들이 크라운 맥주로 호기를 부리던

 검은 안경테의 노강사,

 낡은 가죽가방을 신주처럼 안고

 “이봐 신 선생!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왜 좀 눈치껏 못해?”

 “아 그러길래 선생님도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죠!”

 그처럼 맛있는 술은 다시 없으리

 나 그때 시간강사 10년차,

 끝내 토악질하듯

 실력자 아무개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다가

 비틀비틀 헤어지고는 했는데

 오늘은

 수안보 호텔의 세미나에서 영시를 토론하고

 점잖은 사람들과 품위 있게 밥과 술을 먹은 뒤

 편의점 앞 노천 탁자에서

 천연의 암반수 하이트맥주를 마시고 있다

 통조림 대신 바비큐, 수박, 눌린 오징어, 땅콩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옛날의 술 맛에 비할 수 있으랴

 노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휴양지의 밤하늘은 맑고도 차가운데

 술통처럼 통통하던 그는 지금도 은하 저 너머에서

 술판을 벌여놓고

 홍소를 터뜨리고 있을까

 

 

 

 

 시집『노천 탁자의 기억』서정시학 2010

 

 

 

 

 

  - 1957년 경북상주 출생

     2003년『미네르바』등단

     시집<나무의 손끝> 다층 동인

     강원대 영미언어문화학과 교수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스리움 / 김명은  (0) 2010.09.23
가을 저녁의 말 / 장석남   (0) 2010.09.23
트란툴라 / 정영선  (0) 2010.09.16
지리산과 나의 불편한 관계 / 손택수  (0) 2010.09.16
산길 / 맹문재  (0) 201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