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다
- 문태준
나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나는 중심
코스모스는 주변
바람이 오고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코스모스가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
중심이 흔들린다
욕조의 물이 빠지며 줄어들듯
중심은
나로부터 코스모스에게
서서히 넘어간다
나는 주변
코스모스는 중심
나는 코스모스를
코스모스는 나를
흔들리며 바라보고 있다
시집『그늘의 발달』문지 2008
시인의 산문
날이 밝아오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부엌은 가만히 앉아 있고, 이불은 누워 있다.
엷은 안개가 걷히면서 빛이 들어서고 있다. 조금씩 들어서는 빛처럼 사람들이 세상을 움
직이는 소리가 나의 창문으로 들어선다. 오동나무의 윤곽이 살아나고, 새소리는 큰 공중
을 오가며 반짝인다. 숲으로 가는 젖고 좁은 길이 보인다. 나는 왼손을 오른 손목에 얹고
맥박을 짚는다. 세상이 이처럼 미동으로 막 시작하는 때가 가장 황홀하다. 이 세계를 또
새롭게, 최초로, 충분히 느끼는 때. 이것은 무언가 낯선 곳을 호흡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하루가 또 그늘을 짓고 말았다고 나는 어제 나에게 말했다. 눈물도 그늘이라며 눈물로
얼굴을 덮으면서 말했다. 당신과의 이별도, 그보다 좀더 큰 당신인 세계와의 이별도 어제는
있었다. 황망했다. 예상하지도 못한 채 큰일을 당하고 만 때처럼. 나와 나의 세계를 오로지
설명할 수 있는 둘레로서의 그늘. 나는 발달하는 그늘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어제의 일을
잊은 듯 앉아 있는 나에게 날이 다시 밝아오고 있다. 어두움과 환함의 교차가 이 시간에 어
김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나의 시는 물러나는 빛과 물러나는 어둠, 그 시간에 태
어났다. 당신의 감정과 생각이 대체로 살고 있는 그곳. 그곳을 떠나고 싶지도, 떠날 수도 없다.
그곳은 우리에게 하늘이다.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대 국문과,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
동서문학상,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0) | 2010.06.19 |
---|---|
통영 / 김사인 (0) | 2010.06.18 |
어느 날 가리노래방을 지날 때 / 김민정 (0) | 2010.06.17 |
괄호와 괄호 사이 / 성은주 (0) | 2010.06.17 |
축문(祝文) / 김은주 (0) | 2010.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