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칼과 칼 / 김혜순

폴래폴래 2010. 6. 14. 11:12

 

 

  사진:네이버포토

 

 

 

 

  칼과 칼

 

                     - 김혜순  

 

 

 

  칼이 칼을 사랑한다

 

  발이 없는 것처럼 공중에서 사랑한다

 

  사랑에 빠진 칼은 칼이 아니다 자석이다

 

  서로를 끌어당기며 맴도는 저 집요한 눈빛!

 

  흩어지는 땀방울 내뱉는 신음

 

  두 개의 칼이 잠시 공중에 엇갈려 눕는가 했더니 번쩍이는

 눈빛, 저 멀리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도 한다

 

  서로 몸을 내리치며 은밀하게 숨긴 곳을 겨냥하는 순간, 그

눈빛 속에서 4월마다 벚꽃 모가지 다 떨어지기를 그 몇 번!

 

  누군가 하나 바닥에 몸을 내려놓아야 끝이 나는 칼의 사랑

 

  분홍신을 신은 무희처럼 쉬지 않고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랑을 멈출 수는 없는

 

  시퍼런 몸 힘껏 껴안고 버틸 수는 있어도 끝내 헤어져 돌아갈

수는 없는

 

  공중에서 내려올 수도 그렇다고 넘어질 수도 없는

 

  꼿꼿한 네 개의 무릎에서 피가 솟는다

 

  저 몸도 내 몸처럼 구멍이다 저 검은 구멍을 베어 버려라 저

안이 밖으로 넘치도록 찔러버려라

 

  거기서 솟는 따뜻한 피로 얼굴을 씻어라

 

  아무리 소리쳐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이 끔찍한 사랑

 

  그러기에 이제 내 사랑은 날 선 몸을 공중에 두는 것이었다고

 

  한 번도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한 것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다행

인가? 우리 사랑이 아직 이렇게 공중에 떠 있다는 거?

 

 

 

 

  시집『당신의 첫』문지 2008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문학과지성』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나의 우드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한 잔의 붉은 거울>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