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칼과 칼
- 김혜순
칼이 칼을 사랑한다
발이 없는 것처럼 공중에서 사랑한다
사랑에 빠진 칼은 칼이 아니다 자석이다
서로를 끌어당기며 맴도는 저 집요한 눈빛!
흩어지는 땀방울 내뱉는 신음
두 개의 칼이 잠시 공중에 엇갈려 눕는가 했더니 번쩍이는
눈빛, 저 멀리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도 한다
서로 몸을 내리치며 은밀하게 숨긴 곳을 겨냥하는 순간, 그
눈빛 속에서 4월마다 벚꽃 모가지 다 떨어지기를 그 몇 번!
누군가 하나 바닥에 몸을 내려놓아야 끝이 나는 칼의 사랑
분홍신을 신은 무희처럼 쉬지 않고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랑을 멈출 수는 없는
시퍼런 몸 힘껏 껴안고 버틸 수는 있어도 끝내 헤어져 돌아갈
수는 없는
공중에서 내려올 수도 그렇다고 넘어질 수도 없는
꼿꼿한 네 개의 무릎에서 피가 솟는다
저 몸도 내 몸처럼 구멍이다 저 검은 구멍을 베어 버려라 저
안이 밖으로 넘치도록 찔러버려라
거기서 솟는 따뜻한 피로 얼굴을 씻어라
아무리 소리쳐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이 끔찍한 사랑
그러기에 이제 내 사랑은 날 선 몸을 공중에 두는 것이었다고
한 번도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한 것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다행
인가? 우리 사랑이 아직 이렇게 공중에 떠 있다는 거?
시집『당신의 첫』문지 2008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문학과지성』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나의 우드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한 잔의 붉은 거울>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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