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항 주변
- 박성현
붉은 녹과 이끼가 잔뜩 껴 있어 몹시 불편해 보였으나, 저 배는 뱃머리를 휘갈기던 숭어의 매운 손맛은 잊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해가 기우는 통영, 수묵처럼 어둠이 스미고 골목마다 저녁밥 냄새가 낮게 깔렸다. 여전히, 저 배는 바다의 먼 곳을 뒤척이고 있는데
근해를 떠나본 적 없는 나에게 저 표정은 아득한 꿈이다. 닿을 수 없으므로, 나는 저 배와 함께 기울어지고 출렁이는 것이다.
소매물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축축해지면서 난전을 접은 억센 여자들의 표정에 느긋한 달이 떠올랐다.
바싹 말라버린 멸치 떼, 오래된 물맛을 기다리며 잠들었다.
『주변인과 시』2010년 여름호
- 1970년 서울 출생. 건국대 국문과, 대학원 국문과 문학박사.
2009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등단. 서울교대 출강.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지의 얼굴이 만져지는 밤 / 김지녀 (0) | 2010.06.02 |
---|---|
이덕규 시 읽기 (0) | 2010.06.01 |
돌과 잠자리 / 김두안 (0) | 2010.05.30 |
서커스 천막 안에서 / 강성은 (0) | 2010.05.30 |
앵두꽃이 피었다 / 이일옥 (0) | 2010.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