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배추밭 / 이윤학

폴래폴래 2010. 4. 23. 11:05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배추밭

 

                    - 이윤학 

 

 

 

 여자 친구 혜영이는 키가 크고

 가슴의 젖도 컸다

 

 나일론 끈에 조여 억지로

 품을 안는 한 뙈기 배추밭

 너 살던 집이 올려졌던 자리

 

 이젠 거둘 때가 된 배추

 끌어안을라치면 배추

 꺼칠꺼칠한 털이 먼저 떠오른다

 

 꽃 한번 마음 놓고

 피워보지 못한 배추 포기들을 보니

 뚱보가 되었다는

 네 소식이 궁금하다

 

 꽃을 보면

 어디선가 웃음이 나오던 시절이 그립다

 

 파랗게 질려 있는 배추밭

 나일론 끈을 풀어도 이젠

 펴지지 않는 꽃송이 배추

 

 풋풋한 속 하얀 이파리

 끌어안고 산 배추 밑동을

 부엌칼로 따는 아주머니

 리어카에 싣는 아저씨

 

 무엇을 들킨 것인지

 따끔따끔 쪼아대는 통증이

 오랫동안 따라올 것만 같다

 

 

 

 

  시집『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지 2008

 

 

 

 

  -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그림자를 마신다> 등.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