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벚꽃나무가 꽃피는 밤
- 양애경
괜히 신경이 서는 날
어린 벚꽃나무 한 그루를 생각한다
가느단 손가락 마디마다
물에 갓 씻은 銀같은,
보름달 달빛 같은 꽃봉오리를 달고
몸은 흑단빛,
뭉크의 <사춘기>에 그려진
이제 막 몽긋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젖가슴과
하나로 꼭 붙인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지고
불안한 눈빛을 한 소녀
그 소녀
어린 벚나무 밑둥에 묻혔다
유린당하고 목 졸려 살해되어
하늘은 진즉 어둡고
어두운 자주색 능선 위로
봄이 올 듯
밤공기가 뿌옇게 서성이는데
기름진 산흙 속에서
소녀의 하얀 허벅지가 분해된다
긴 갈색 머리카락은 아직
어느 벌레도 먹지 못했다
괜히 자다 깨어 잠 오지 않는 밤
눈을 감으면
어린 벚꽃 봉오리에서
팝콘처럼 하얗게 하얗게
꽃잎이 밀려나오는 게 보인다
일시에 쏟아져 내렸다
『서시』2010년 봄호
-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사랑의 예감>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내가 암늑대라면>
공주영상정보대 영상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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