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어린 벚꽃나무가 꽃피는 밤 / 양애경

폴래폴래 2010. 3. 29. 09:20

 

 

 

 

 

  어린 벚꽃나무가 꽃피는 밤

 

                                             - 양애경 

 

 

 

 괜히 신경이 서는 날

 어린 벚꽃나무 한 그루를 생각한다

 

 가느단 손가락 마디마다

 물에 갓 씻은 銀같은,

 보름달 달빛 같은 꽃봉오리를 달고

 몸은 흑단빛,

 

 뭉크의 <사춘기>에 그려진

 이제 막 몽긋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젖가슴과

 하나로 꼭 붙인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지고

 불안한 눈빛을 한 소녀

 

 그 소녀

 어린 벚나무 밑둥에 묻혔다

 유린당하고 목 졸려 살해되어

 

 하늘은 진즉 어둡고

 어두운 자주색 능선 위로

 봄이 올 듯

 밤공기가 뿌옇게 서성이는데

 

 기름진 산흙 속에서

 소녀의 하얀 허벅지가 분해된다

 긴 갈색 머리카락은 아직

 어느 벌레도 먹지 못했다

 

 괜히 자다 깨어 잠 오지 않는 밤

 눈을 감으면

 어린 벚꽃 봉오리에서

 팝콘처럼 하얗게 하얗게

 꽃잎이 밀려나오는 게 보인다

 

 일시에 쏟아져 내렸다

 

 

 

 

  『서시』2010년 봄호

 

 

 

 

  -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사랑의 예감>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내가 암늑대라면>

     공주영상정보대 영상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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