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쇼핑하기 시작한 11분 후
- 김륭
둥근 달의 눈썹 사이에서 불쑥 아비는 게으르게, 아무래도 아비는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솟아나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물을 수도 없었으므로 소식이 끊길 리도 맘무했습니다.
그날은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달에서 물을 찾았다고 지구가 우리 동네 허름한 미장원에서 머리를 감던 날이었습니다. 무지렁이 난민들도 알고 있던 사실이야, 거울은 그렇게 말했고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려 달의 눈동자를 닫아주었습니다.
글쎄 말입니다. 난파된 달을 하수구에서 건졌다면 또 모를 일이지요. 남해안 77번 국도를 따라 공룡발자국이 있는 고성군 거류면 당동 삼거리, 진눈깨비 내리던 교통사고 현장에서 아비는 문득 발견된 것입니다.
질주하던 승용차가 앞서가던 대형트럭 꽁무니를 사정없이 박았습니다. 트럭은 승용차보다 조금 앞서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아비 앞에서 끼-익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그날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승용차의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아비의 잘못입니까? 더더욱 아닙니다. 발견하지 말아야 할 아비를 발견한 대형트럭의 잘못입니다. 아비가 한평생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고물자전거, 내처 달릴 수는 있지만 후진할 수 없는 달의 잘못입니다.
한때는 하늘에 뜬 별을 몽땅 쓸어 담을 수 있는 호주머니 같았던 아비의 달은 두 개여서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미가 알았다면 이미 오래 전에 똑 다리몽둥이가 부러졌겠지만 아비는 아무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아비는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비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번 발견은 달의 이해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것입니다. 아비는 언제나 오고 있는 중입니다.
길 따라 오십니까? 아닙니다. 달을 따라 오는 중입니다. 달을 쇼핑중인 내 눈동자 속으로 고물자전거 앞바퀴가 떠내려 왔습니다. 달을 쳐다보고 흘린 눈물만 해도 수백수천 바가지가 넘는다는 어미의 한숨소리가 말뚝에 고삐를 맵니다.
그리하여 아비의 그림자는 달의 거웃입니다. 달에서 물을 찾았다며 우리 동네 허름한 미장원에서 머리를 감던 지구가 가물가물 멀어졌습니다. 마침내 나는 쿡, 아비 옆구리를 찔러 달의 뼛조각 하나 찾아냅니다.
" 애썼다"
- 2009년『문장 웹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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