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치마의 전설
─ 바지만 입는다고 아들이 되거나 처자식을 거느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되는 일마저 실패했다
- 김륭
나는, 지금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백 년째 울고 있다
빨랫줄에서 떨어진 빨래로 읽었다면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함부로 몸 굴리거나 퍼덕대지 않으리란 믿음은 언제나 하늘 아래쪽의 일이다
마른장작 타는 냄새 풍기며 가만히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비닐우산처럼 펼쳐진 나무그늘 속에 그녀가 전설처럼 서있다
내 흠뻑 젖은 시간의 바지를 달래고 있다
바람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몰려갔다 갈기갈기 세상을 찢어발길 듯
여자의 팔다리가 잘렸다
붉은왜가리처럼 어깻죽지 날아오르는 그 순간까지 여자는
불끈 움켜쥔 치마끈을 놓치지 않았다
치마가 없었다면 어머니마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 단 한 벌밖에 없는 지상의 기둥서방으로 눌러앉을 때까지
나무는 여자다
『미네르바』2008년 여름호
- 1961년 경남 진주 출생. 조선대 중국어과 졸업
2007년《강원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7년『문화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1988년 불교문학신인상
2005년 김달진 월하지역문학상 수상.
동시집<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문학동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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