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슈룹*
- 윤향기
후두두~ 후두두둑~! 빗방울 듣는다, 등교시간에 여름 소나기 정수리에 내리친다. 꽃무늬 알록달록한 포플린 책보, 책보를 둘러 맨 계집아이가 안방에서 나온다. 문간에 대기하고 있던 머슴이 소녀를 덥석 등에 업는다.
“가입시다.”
“얘야, 슈룹 여기 있다. 슈룹 꼭 잡고 가거라.”
일학년짜리 딸아이를 염려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섞여 우루루 쿵 우레가 지나간다. 얼만큼 걸었을까. 밀밭 길을 지나자 실개천이 나타난다. 그 사이 냇물이 불어 평소에 건너다니던 돌다리가 거기 있었느냐는 듯 다리는 종적도 없다. 검정 고무신을 물가에 벗어놓고 바지가 젖어도 상관없이 성난 황소처럼 거센 흙탕물 속을 첨벙첨벙 건넌다. 겁도 없이 건넌 냇물. 하늘이 뚫렸는지 비는 그칠 줄 모른다. 허리 구부려 무논 갈던 그의 등,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물큰, 빗방울소리 요란한 종이슈룹에서는 아주까리기름 냄새가 난다. 머슴은 소녀에게 어깨를 꼭 잡으라 이른다. 정신없이 물을 건너온 그는 학교 앞 면사무소 모퉁이에 이르러 냉큼 소녀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기씨! 올 때 슈룹 꼭 챙겨 나오시소. 지 그 때 다시 오꾸마요.”
나는 아직 고향에 가지 못한다. 고향에 두고 온 나를 찾아 만나러 가지 못한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그 머슴에게 슈룹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아직 고향에 가지 못하고 떠돈다.
*슈룹: 순우리말 고어로 우산.
- 『서정시학』2009년 겨울호
- 1991년 시집『내 영혼 속에 네가 지은 집』으로 작품 활동.
시집<피어라, 플라멘코!>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정은 한소끔 / 홍정순 (0) | 2010.01.28 |
---|---|
노란 붓꽃 / 장승리 (0) | 2010.01.28 |
눈 / 채호기 (0) | 2010.01.26 |
데자뷔 / 강기원 (0) | 2010.01.26 |
문간 / 이하석 (0) | 2010.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