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눈 / 채호기

폴래폴래 2010. 1. 26. 12:40

 

 

 

 

 

  눈

 

           - 채호기  

 

 

 

 당신의 눈에서

 사랑의 눈이 펄펄 내립니다.

 눈은 쌓이지 않고 대부분

 가슴에 깨끗이 스며듭니다.

 

 당신이 가본 적 없는 내 마음의

 먼 산에도 눈은 쌓이겠지요.

 나는 도심의 한가운데서

 흰곰처럼 웅크린 먼 산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물기 어린 눈에서

 눈이 내리고……

 먼 산에 눈은 쌓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언 길을 미끄러지지 않고

 흰 날개를 팔랑이며 내려와

 조용한 수면에 닿겠지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사랑하는 당신의 눈에서

 사랑의 눈이 내립니다.

 내 마음에 자국도 없이……

 

 사랑의 함박눈이 내리고

 내가 가본 적 없는 당신 마음의

 먼 산에도 눈은 쌓이겠지요.

 

 당신과 내가 이렇게

 함께 따뜻해도

 눈이 쌓일수록 깊어가는 고요뿐

 당신과 내가 가본 적 없는

 먼 산에 눈은 쌓이겠지요.

 

 눈 쌓인 먼 산에 가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당신과 내가 모르는

 덧없는 치장일 뿐이지요.

 

 

 

  시집『손가락이 뜨겁다』문지 2009

 

 

 

  - 1957년 대구 출생. 대전대 국문과 졸업.

    1988년『창작과비평』등단.

    시집<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 공중전화><수련>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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