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리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리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시집『이 시대의 아벨』문지 1983
-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학 졸업.
1975년『현대문학』추천 등단.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역임.
시집<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외 9권
1991년 6월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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