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폴래폴래 2010. 1. 11. 11:29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리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리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시집『이 시대의 아벨』문지 1983

 

 

 

 

  -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학 졸업.

     1975년『현대문학』추천 등단.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역임.

    시집<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외 9권

    1991년 6월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