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2010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폴래폴래 2010. 1. 7. 10:11

 

 

 오르골

 

                     - 이슬

 

 

 

 나무의 뿌리들이 태엽을 감고 있는 시간

 누군가 상자뚜껑을 열듯 소리를 쏟아내는 나무들의 춤

 소리가 멎을 때까지 흔들리는 일에 한창이다

 울긋불긋 어지러운 현기증을 다 털어낸 자리

 나뭇가지를 뛰어 다니며 놀던 수액들은 모두 바람이 된다

 앞뒤를 보여주며

 숨기는 것 없다는 듯 보여주는 엽록의 투명한 연주가 길다

 앞의 사이사이마다 음계가 반짝 거린다

 

 새들이 앉았다 간 나무 밑 마다

 불안한 노래가 가득 떨어져 있다

 뿌리가 감고 있는 것은 깊은 어둠이다

 칸칸의 어둠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들

 가끔 잎을 털어내는 환한 시간이면 날아오르는 새들이 있다

 

 가장 밝았던 한 때

 꽃잎의 치어들을 다 허공에 날려 보내고

 나무는 지금 푸르게 비어 있다

 꽃의 그늘이 진 자리에 초록의 소리가 가득 하다

 

 바람의 흔적이 가득한 나무 속

 나이테를 돌아 풀어지는 태엽

 평생 춤출 곡이 빙빙 돌아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푸른 치마를 입고 거꾸로 서서 흔들리는 듯

 바람이 상자를 닫는 시간

 음계들이 떨어진 나무 밑에는 그늘도 다 졌다

 나선형의 나이테 그 길이만큼 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