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2010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폴래폴래 2010. 1. 7. 09:48

 

 

 구름의 화법

 

                           - 하기정

 

 

 구름은 여태 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어

 형상은 당신 머릿속에나 있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물방울이 아니야, 보다 가볍지

 당신의 어깨를 적실 수도

 당신의 입가를 핥을 수도 있지

 

 그러니 나를 구름이라 이름 짓는 건 아주 치명적이지

 네가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들, 네가

 토끼, 라고 부르면 난 하마처럼 하품을 해 네가

 고양이, 라고 부르면 난 호랑이처럼 포효하지 네가

 의자, 라고 부른다면 금세 침대를 만들어 줄 수도 있어

 만지면 폭삭 꺼지는 먼지버섯, 그러니 나를

 버섯이라 불러도 좋아

 형상은 당신 눈 속에나 있지

 그러니S라인 B라인은 네 이름

 

 무대가 아닌 곳에서만 춤을 출거야

 내 음악은 내 귀로만 흘러들어 언제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나를

 이해하려 시도한다면 그것은 서툰 오해

 나를 만지려든다는 건 아주 절망적이야

 롤러코스터를 생각한다면 모르지

 추락은 오로지 빗물, 눈물

 

 행여 구름을 담아서 팔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의 시선을 구부리는 일

 악어, 라고 하면 도마뱀이 되어줄래?

 고래, 라고 하면 돛단배가 되어줄래?

 나에게 나를 너, 라고 불러줄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 1970년 전북 임실 출생

    우석대 대학원 문창과 재학 중

    2008년 5·18문학상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