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그의 아내
- 문정희
불꽃놀이가 있던 밤 극장 앞에서
그의 아내를 보았다
그녀의 목에 가느다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어느 생일날 그가 걸어준 것인 듯
아니면 첫아이를 낳은 날이거나
부부싸움 끝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병석에서 그의 어머니가 일어난 날
오랜 간호의 수고를 감사하며 함께 산 것일지도
바닷가 조가비에 밤하늘의 별무늬가 새겨져 있듯이
그의 아내에게서 오묘히 그의 무늬를 보았다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사소한 시간을 으깨어 만든 무늬를
물론 나는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먼 곳에서 온 사람
가령 낭만적인 재미를 위해
그와 나 사이에다 돌연하고도 아름다운
무슨 추측을 가해 본다 해도
그날 밤 그의 아내를 보자마자
우리의 것은 멜로이거나 바람이거나
할 수 없이 불륜이었다
그에게 반듯한 저 양복을 골라 입히고
뒤쪽에 키를 낮추고 서 있는 그의 아내
아무것도 아닌 주춧돌처럼 수수한 여자
그날 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녀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시집『나는 문이다』뿔 2007
자서
나는 문이다
하늘 아래 문이 있다
이제 문을 잊고 싶다
나는 문이 아니다
2007년 여름
문정희
- 1969년《월간문학》신인상 등단
시집<새떼><찔레>등 십여 권
현대문학상,소월시문학상,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동국대 석좌교수 역임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미원 간다 / 조용미 (0) | 2009.12.29 |
---|---|
투구꽃 / 최두석 (0) | 2009.12.29 |
안개에게 길을 묻다 / 조은길 (0) | 2009.12.28 |
세월이 가면서 내게 하는 귓속말 / 김명리 (0) | 2009.12.27 |
엉엉 울며 동네 한 바퀴 / 공광규 (0) | 200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