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십일월, 배밭을 지나며 / 조용미

폴래폴래 2009. 11. 9. 09:55

 

 

 

         사진:네이버포토

 

 

 

     십일월, 배밭을 지나며

 

                                            - 조용미

 

 

 

 십일월의 과수원,

 배나무에 열린 배를 덮고 있던 흰 종이 누런 종이들이

 만장처럼 매달려 펄럭인다

 먼 데서 보면

 흰 꽃들이 소복이 피어 있는 듯

 

 십일월의 과수원은

 배를 갓처럼 싸고 있던 흰 종이들이

 배나무가 순산을 하듯

 탯줄을 끊고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고 나부끼고 있다

 

 빈 가지마다 거두지 못한 태반처럼

 종이들이 남겨져 펄럭이고 있다

 다 늦은 가을 흰 꽃들은 피어서,

 큼직하게 매달렸던 배들이 떨어지고 난 자리에

 흰 꽃들은 피어나서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스산한 흰 꽃들은 난만히 피어나서,

 눈이 내리는 듯한 세상이 가고 또 오는 듯

 펄럭, 펄럭이고 있다

 눈송이들이 멀어지며 작아지고 있다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한길문학』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2005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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