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일기예보 / 안시아

폴래폴래 2009. 7. 12. 18:02

 

 

 

 

                                      사진:네이버포토

 

 

 

 

           일기예보

 

                                       - 안시아 

 

 

 

 우산을 들고 있다 건널목에서도

 버스에서도 놓지 않는다

 동전을 바꿨던 가판대로 되돌아간 것도

 전화를 받으며 수첩을 놓친 것도 그 이유다

 맑은 날 흘낏거리는 건 물론

 얼굴에 뭐가 쓰여 있기 때문은 아니다

 

 수첩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첫차 시각과 좌석 번호,

 나는 또 떠날 궁리를 한 셈이다

 이름 하나가 선명했는데 불러보지 못한 고백이었다

 카메라에 담는 건 꽃인가요

 꽃잎을 흔드는 기별인가요

 라는 질문은 유효했다

 그날 이후 이곳엔 비가 정류하지 않았다

 

 우산으로 타들어가는 햇빛, 펼치기만 하면

 플라타너스의 깊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승강장 뒤로 안전하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말랐다가도 물만 주면 초록을 들이미는

 화분의 다짐이 소름 끼치기도 했다

 그사이 당신은 호흡이 피고 지고,

 

 오늘 반드시 비가 올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시집『수상한 꽃』랜덤하우스2007

 

 

 

                      - 서울 출생. 한양여대, 서울산업대 문창과 졸업.

                          2003년『현대시학』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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