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 김경주

폴래폴래 2009. 5. 28. 00:17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 김경주

 

 

 

 

  한번은 쓰다듬고

  한번은 쓸러간다

 

  검은 모래해변에 쓸려온 흰 고래

 

  내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지갑엔 고래의 향유가 흘러 있고 내가 지닌 가장 오래된 표정은 아무도 없는 해변의 녹슨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씹어 먹던 사과의 맛

 

  방 안에 누워 그대가 내 머리칼들을 쓸어내려 주면 그대의 손가락 사이로 파도 소리가 난다 나는 그대의 손바닥에 가라앉는 고래의 표정으로 숨쉬는 법을 처음 배우는 머리카락들, 해변에 누워 있는데 내가 지닌 가장 쓸쓸한 지갑에서 부드러운 고래 두 마리 흘러나온다 감은 눈이 감은 눈으로 와 비빈다 서로의 해안을 열고 들어가 물거품을 일으킨다

 

  어떤 적요는

  누군가의 음모마저도 사랑하고 싶다

  그 깊은 음모에도 내 입술은 닿아 있어

  이번 생은 머리칼을 지갑에 나누어 가지지만

  마중 나가는 일에는

  질식하지 않기로

 

  해변으로 떠내려온 물색의 별자리가 휘고 있다

 

 

 

 

 

 

                        - 2003년 대한매일(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안양예술고교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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