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 조은길
산꼭대기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면
장난감 블록을 쏟아놓은 듯 작은 네모들
마을은 장난감 블록으로 만든 간이역 같다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 머물지 않는
떠나고 싶은 사람들로 역이 북새통일 것 같은
어쩌면 저곳은 이브와 아담이 잃어버린 나라
우리들이 자나 깨나 그리운 그곳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간이역인지 모른다
척척 쿵쿵 척척 쿵쿵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빈 성냥갑처럼 초라해지고 말 간이역
오오 기차는 언제 오는가
허공 속에 둥둥 떠 있는 놀이기구 앞에
상기된 표정으로 줄을 서 있던 사람들
비닐 문짝 펄럭이는 포장마차 알전등 불빛
아래 밤을 새워 술잔을 돌리던 사람들
노인정 비닐 장판 위에 이마를 맞대고 앉아
국밥 내기 민화투를 치고 있던 사람들
그들은 좀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견디느라 애를 쓰던 중이었으리라
그들의 눈가에 눈물자국이 어려 있는 것은
기차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상처주기 이별하기 같은 과격한 놀이를
간간이 즐겼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다만 언제인가
척척 쿵쿵 척척 쿵쿵
높은 휘파람을 휘날리며 나타날
그리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 경남 마산 출생.
1998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노을이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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