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천득 수필의 특질은 무엇인가
피천득의 수필은 한마디로 맑고 투명하다. 그 맑고 투명함은 자잘한 돌 자갈 바닥이 훤히 보이는 시냇가에 송사리 떼가 놀고 있는 모습을 수채화로 그려놓은 듯 하다. 피천득은 자신의 이런 특성을 ‘수필’이라는 작품 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중략 -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연적을 필요로 한다. -「작품 ‘수필’ 중에서」
수필로 쓴 자신의 수필론인 것이다. 피천득이 자신의 수필을 이렇게 정의했듯 그는 시종일관 이 수필론에 충실한 글들을 써 왔다. 이에 대해 윤오영(尹五榮)은 “이 수필론으로 포섭할 수 없는 그 밖의 수필은 얼마든지 있지만, 자신의 수필론을 뒷받침하는 수필작품이 따르지 않는 수필론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흥미도 주지 못한다. 이것은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말해 주는 것이요, 스스로의 수필문학을 탐색하는 과정의 기록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피천득은 자신의 수필론에 어떻게 부합하고 있는가.
2. 피천득 수필의 투명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마음의 풍경을 형상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란한 수사보다는 삶의 속물스러움을 한 겹 벗겨낸 말갛고 투명한 속살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소설이 재래시장 바닥의 질펀한 땀 냄새를 형상화한다면 수필은 일터에서 돌아와 말갛게 얼굴을 씻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펴놓고 있는 겸허한 모습이다. 치열했던 하루를 돌아보며 쓸데없이 분개하여 감정을 낭비한 일은 없었는지, 생각 없는 말로 다른 이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되뇌어 본다. 반성에서 시작한 정서는 자신을 관조하고 나아가 작은 것들에서 삶의 의미와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수필이다.
피천득 수필의 투명함은 바로 이러한 관조에서 시작한다. 느릿느릿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흔들어 놓는다. 일상에 무디어져 갑각류가 되어버린 사람의 감성을 파고들어 그의 가장 연하고 말랑한 부분을, 봄바람에 일어나는 호수의 파문처럼 은은하게 두드리고 쓰다듬는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떼면서 조근조근 사람들 마음속의 감동을, 눈물을 길어 올리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수채화같이 맑고 투명함이 비롯되는 근원을 거슬러 그의 유년시절을 살펴본다.
나는 그날 유치원에서 몰래 빠져나왔었다. 순이한테 끌려다니다가 처음으로 혼자 큰 한길을 걷는 것이 어떻게나 기뻤는지 몰랐었다. 금시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잡화상 유리창도 들어다보고, 약 파는 사람 연설하는 것도 듣고, 아이들 싸움하는 것 구경하고 그러느라고 좀 늦게야 온 듯하다. 자다가 눈을 떠 보니 캄캄하였다.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벽장문을 발길로 찼다.
엄마는 달려들어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엄마의 가슴이 왜 그렇게 뛰었는지 엄마의 팔이 왜 그렇게 떨렸는지 나는 몰랐었다.
“너를 잃은 줄 알고 엄마는 미친년 모양으로 돌아다녔다. 너는 왜 그리 엄마를 성화 먹이니. 어쩌자고 너 혼자 온단 말이냐. 그리고 숨기까지 하니. 너 하나 믿고 살아가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달아나야 되겠다.” 나들이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나를 찾으러 나갔던 것이었다. 아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그저 울었다. - 중략 -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 중략 -
여름이면 모시, 겨울이면 옥양목, 그의 생활은 모시같이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같이 깨끗하고 차가웠다. 황진이처럼 멋있던 그는 죽은 남편을 위하여 기도와 고행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폭포 같은 마음을 지닌 채 호수같이 살려고 애를 쓰다가 바다로 가고야 말았다.- 중략 -
삼십 시대에 세상을 떠난 그는 언제나 젊고 아름답다. 내가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엄마한테서 배운 웃음이다. 나는 엄마 아들답지 않은 때가 많으나 그래도 엄마의 아들이다. - 중략 -
엄마와 나는 숨기내기를 잘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를 금방 찾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있어야 나를 찾아냈다. 나는 다락 속에 있는데, 엄마는 이 방 저 방 찾아다녔다. 다락을 열고 들여다보고서도 “여기도 없네”하고 그냥 가 버린다. 광에도 가 보고 장독 뒤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하도 답답해서 소리를 내면 그제야 겨우 찾아냈다.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작품 ‘엄마’ 중에서」
여기서 ‘몰랐다’는 ‘이제는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지금은 ‘너무나 잘 아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시치미를 뗌으로써 독자들의 가슴을 찌릿하게 저미게 한다.
엄마는 나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나는 왕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쓰고 다니던 내가 왕자 같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 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작품 ‘엄마’ 중에서」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는 걱정을 할 때 엄마가 새 아버지를 만나 재혼이라도 하게 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하늘나라로 영영 가버린 엄마를 원망하고 있다. 그 원망 속에는 피울음 같은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렇듯 피천득은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지만 일찍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마저 삼십대의 나이로 요절한 후 엄마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엄마와 지냈던 짧았지만 행복으로 벅찼던 기억들은 그의 정서를 형성했다. 그가 평생을 살아가는데 움직일 수 없고 품성이 되었고, 생각의 방식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필 전편에 나타나는 이런 ‘맑고 투명함’들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행복했던 시절을 그의 외동딸 서영이에게로 고스란히 답습시키고자 애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수필 ‘찬란한 시절’을 보자.
수공 가위와 크레용이 든 가방을 메고 서영이가 아침 일찍이 유치원에 가는 것을 보면, 예전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생각이 난다.
나는 그때 동그란 도시락을 색실로 짠 주머니에다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 도시락을 휘둘러서 동무들을 곧잘 때렸다. 하루는 유치원이 파하고 다들 집으로 가는데, 나를 데리러 오는 유모가 아니 오셔서 혼자 남아서 울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달래느라고 색종이를 주셨다. 그 빨간빛 파란빛 초록빛 연두색깔이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던 일은 그 후로는 없다. - 중략 -
유치원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갈 시절이다. -「작품 ‘찬란한 시절’ 중에서」
그러나 그의 투명함은 유복함이나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천성적 소박함에서 비롯된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엄마와 함께 했던 시절의 아이로 성장을 멈추고 싶은, 작가 자신의 본능적 자아의 발로이다.
이 세상에서 아기의 엄마같이 뽐내기 좋은 지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엄마의 아기 같은 소중한 것이 다시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 뺨을 가만히 만져 보면 아실 것입니다. 아기의 머리칼을 만져 보면 아실 것입니다. 그 아기는 엄마가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젖을 먹여 기르고 있습니다. 아기는 커 가고 있습니다. 자라고 있습니다. -「작품 ‘찬란한 시절’ 중에서」
급기야 그는 “젊은 엄마들이 부러운 나는 난영이 엄마노릇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언제나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으로 살고 싶은 그의 심성에서 맑음과 투명함은 끊임없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3. 그의 수필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그는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데 천부적 소질을 지녔다. 그것은 타고난 천성적 소박함에서도 연유하지만 작은 것에 눈길을 주고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성숙된 인간미를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피천득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주변에서 시작한다. 허황되이 먼 곳만 살피지 아니하고 내 주변을 따뜻한 눈길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쓰다듬고 품어 안는다. 그것은 정말 소중한 것은 멀리 있거나 큰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인간미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 ‘서영이에게’를 보자.
네 윗니 빠진 것 두 개 새로 나왔니? 아직 안나왔으면 치과에 엄마하고 가보아라. 네가 보고 싶을 때면 네가 부르던 노래를 불러본다. 미국에 왔던 한국 어린이 합창단이 불러 넣은 레코드를 빌려다 들으면서 네 생각을 하기도 한다. 네가 고무줄 놀이하는 것이 몹시 보고 싶다.
그는 아빠로서 자상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 중략 -
결혼을 한 뒤라도 나는 내 딸이 남의 집 사람이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집살이는 아니하고 독립한 가정을 이룰 것이며, 거기에는 부부의 똑같은 의무와 권리가 있을 것이다. 아내도 새 집에 온 것이요, 남편도 새 집에 온 것이다. 남편의 집인 동시에 아내의 집이요, 아내의 집인 동시에 남편의 집이다. 결혼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사랑은 억지로 해지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사람에 따라, 특히 천품이 있는 여자에 있어서 자기에게 충실하기 위하여 아니하는 것도 좋다. 자기의 학문, 예술, 종교 또는 다른 사명이 결혼 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의의 있을 것이다.
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평등의식으로 발전되고 더 나아가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결혼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소박한 꿈은 이 부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었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고. 지금 나에게 이 축복 받은 겨울이 있다. 장래 결혼을 하면 서영이에게도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렇지 않으면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좋겠다. 그리고 다행히 내가 오래 살면 서영이 집 근처에서 살겠다. 아이 둘이 날마다 놀러 올 것이다. 나는 <파랑새> 이야기도 하여 주고 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의 엄마처럼 나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장기도 둘 것이다. 새로 나오는 잎새같이 보드라운 뺨을 만져 보고 그 맑은 눈 속에서 나의 여생은 축복을 받겠다. -「작품 ‘서영이’ 중에서」
이렇듯 그의 수필은 작고 소박한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그의 생활이요, 생각이며 그 자신인 것이다. 그의 수필은 이러한 소박한 주변에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그의 꿈은 결코 누추하거나 졸렬하지 않다.
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태사신, 이름 쓴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 논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 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작품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 논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등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지만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며 살 수 있기란 내 마음의 수양이 거의 도인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또한 ‘점잖게 늙고 싶다’는 희망도 소박하지만 가장 큰 희망이다. 이렇듯 피천득은 결코 호락하거나 적당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수도자적 청빈함으로 작은 것들에서 인생을 보고 철학을 형성시키며 행복을 가꾸어 가는 사람이다.
4. 문자기호로 그린 정서의 수채화
피천득 수필의 백미는 단연코 단순함이다. 소재는 주변에서 찾지만 과감히 절제된 감정과 일상풍경들의 묘사에서 미학을 느끼게 한다. 필요 없는 잡다한 구체물을 늘어놓지 않음으로써 마치 구도가 잘 잡힌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오후 다섯 시에 집에 돌아오니 서영이가 아직도 학교에서 아니 와 있다. 엄마보고 이웃집에 가서 전화를 걸어 보라고 하였다.
“세 시 반에 파했다는데요.”
바깥은 벌써 캄캄하여 온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내리는 작은 여학생은 다 서영이 같았다. 나는 세 시경에 다방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 데리고 올 것을 잘못하였다. 어디를 갔을까? 오늘 청소도 아닌데….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서영이는 버스에서 내리더니 학교에서 놀다가 왔다고 한다. 나는 나무라지 않았다.
“버스에 사람 많지? 자꾸 밀리지 않던?” 하고 물어보았다. -「작품 ‘어느날’ 중에서」
단순함 속에서도 그는 훌륭하게 정서의 소통을 이끌어 낸다. 마치 엄마 뒤에 숨어서 살짝살짝 얼굴을 내미는 수줍은 영희를 단번에 훔쳐보는 철수의 민첩함, 예리함처럼 삶의 치열함 속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을 문득 창호지 문살에 일렁이는 달그림자를 나꿔채듯 가슴속의 맑음들을 잽싸고 정확하게 잡아내 형상화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다.
그런가하면 마음 속 깊숙히 자리한 열등감까지도 햇빛아래 드러내고 담담하게 펼쳐놓음으로써 ‘당신은 안 그래요’하고 묵계적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동의는 곧 긍정이요, 소통이다.
나의 선친께서는 종로, 지금 화신 건너편에서 신전을 하셨다. 피씨가 가죽신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성 밑에 붙는 칭호가 없어 허전하였던지 구한(舊韓) 말기에 주사(主事)라는 벼슬을 돈을 내고 샀다. 관직이라기보다는 칭호를 얻은 것이다.
내가 여섯 살 때 ‘피주사댁 입납(皮主事宅入納)’ 이라고 쓴 봉투를 본 일이 있다. 그리고 우리도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 주고 살 바에야 왜 겨우 ‘주사’를 사셨는지 모를 일이다. 돈만 많이 내면 승지(承旨)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 중략 -
성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이름에 대해서도 할말이 있다. 천득(千得)이라 하면 그리 점잖은 이름은 못 된다. 이름이라도 풍채 좋은 것으로 바꿔 볼까 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부르던 이름을 내 어찌 고치랴! - 중략 -
아무려나 50년 나와 함께하여, 헌 책등같이 된 이름 금박(金箔)으로 빛낸 적도 없었다. 그런대로 아껴 과히 더럽히지 않았으면 한다. -「작품 ‘피가지변’ 중에서」
모든 것은 소통의 문제다. 사람간의 소통이 되지 않으면 싸움이 일고 제 몸 속에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문학 또한 예술로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있다. 정서의 소통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피천득은 선친이 신전을 하여 모은 돈으로 양반을 샀다고 당당히 얘기하고 있다. 한술 더 떠 기왕 돈 주고 살 바엔 승지를 사지 왜 주사를 샀는지 모르겠다며 투정 섞인 어조를 띠기도 한다. 그가 이런 사실들을 스스로 햇빛 아래 드러내놓지 않고 감추기에 급급하였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흠잡으려 했을 것이다.
자신의 치부는 맑음으로 헹궈 드러내놓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그는 ‘피가지변’으로 소통을 이뤘다고 할 것이다.
5. 수필 문학으로서의 피천득 수필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건강미를 지닌 장르를 꼽는다면 단연 수필일 것이다. 건강미는 아름다운 얼굴이나 날렵한 몸맵시보다는 뒤로 치는 것이 보통이다.
수필은 보다 기이하고 비틀린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관조나 의미부여를 통해 한 점 순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삶의 건강함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수필문학의 본질이자 개성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이 수필의 숙명인 잡문성, 교훈성이기도 하여 문학적 평가를 받는 데 한계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피천득 수필은 가르치려하기보다는 그저 펼쳐놓음으로써 역할을 다한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지만 어느새 독자들의 마음에 촉촉이 젖어들어 감동으로 소통하고 있다.
수필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학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자랑하려고 해서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피천득은 ‘낙서’라는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소학교 시절에 여름이면 파란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 그런데 새로 빨아 다린 것을 입는 날이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두루마기가 구겨지고 풀이 죽기 시작하면 나의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 중략 -
가슴을 펴고 배를 내밀고 걸어 보라고 일러 주는 친구가 있다. 옷차림도 변변치 않은데다가 작은 키를 구부리고 다니는 것이 보기에 딱한 모양이다. 그래 나는 어떤 교장 선생님같이 작은 몸을 자빠질 듯이 뒤로 젖히고 팔을 저으며 걸어 보았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몹시 힘 드는 일이었다. 잘난 것도 없는 나이니 그저 구부리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작품 ‘낙서’ 중에서」
이처럼 자신을 낮춤으로써 돋보이는 것이 또한 수필장르의 매력중 하나라 할 것이다. 쉽게 읽히나 읽고 나면 가슴이 가득해지는 것이 수필이다. 머리를 싸매고 무엇을 얻으려고 끙끙대지 않고도 삶의 진지함이 잔잔하게 감동으로 오는 것이 또한 수필이다. 이처럼 수필은 가볍지만 결코 가벼운 문학이 아니요, 짧지만 결코 쉽게 써지는 문학이 아니다. 피천득의 수필 역시 쉽게 읽히나 가볍지 아니하고, 짧지만 결코 쉽게 써진 글이 아니다. 그는 평생 동안의 산문을 수필집 <인연> 한 권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때는 쓰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20년 전에 절필한 그를 보아도 그렇다.
1969년 <산호와 진주>라는 이름으로 산문집을 출간한 바 있지만 그에 실린 작품들이 바로 <인연>에 실린 작품들이며 책 제목만 바뀌었을 뿐이다.
피천득의 수필이 그의 정서에서 뽑아 올려 문자기호로 그린 수채화이듯이 문학 장르에 있어 수필은 우리 인생의 씨줄과 날줄에로 그려내는 천태만상의 문양일 것이다.
피천득 수필 읽기
<수필>
수필은 청자(靑磁) 연적(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優雅)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언제나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는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 분지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엄마>
마당으로 뛰어내려와 안고 들어갈 텐데 웬일인지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또 숨었구나!` 방문을 열어봐도 엄마가 없었다. `옳지 그럼 다락에 있지` 발판을 갖다 놓고 다락문을 열었으나 엄마는 거기도 없었다. 건넛방까지 가 봐도 없었을 때에는 앞이 아니 보였다. 울음 섞인 목소리는 몇 번이나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마루에서 재각대는 시계 소리밖에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주춧돌 위에 앉아서 정말 엄마 없는 아이같이 울었다. 그러다가 신발을 벗어서 안고 벽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 유치원에서 몰래 빠져 나왔었다. 순이한테 끌려 다니다가 처음으로 혼자 큰 한길을 걷는 것이 어떻게나 기뻤는지 몰랐었다. 금시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잡화상 유리창도 들여다보고, 약 파는 사람 연설하는 것도 듣고, 아이들 싸움하는 것 구경하고 그러느라고 좀 늦게야 온 듯하다. 자다가 눈을 떠보니 캄캄하였다.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벽장문을 발길로 찼다.
엄마는 달려들어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엄마의 가슴이 왜 그렇게 뛰었는지 엄마의 팔이 왜 그렇게 떨렸는지 나는 몰랐었다.
"너를 잃은 줄 알고 엄마는 미친년 모양으로 돌아다녔다. 너는 왜 그리 엄마를 성화먹이니 , 어쩌자고 너 혼자 온단 말이냐. 그리고 숨기까지 하니 너 하나 믿고 살아가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달아나야 되겠다." 나들이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나를 찾으러 나갔던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그저 울었다.
그 후 어떤 날 밤에 자다가 깨어보니 엄마는 아니 자고 무엇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장롱에서 옷들을 꺼내더니 돌아가신 아빠옷 한 벌에 엄마옷 한 벌씩 짝을 맞춰 차곡차곡 집어넣고 내 옷은 따로 반닫이에 넣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슬퍼졌지만 엄마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엄마는 아빠를 따라가고 말았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道)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비단이나 고운 색깔을 몸에 대신 일이 없었다. 분을 바르신 일도 없었다. 사람들이 자기 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엄마는 죽은 아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여름이면 모시, 겨울이면 옥양목, 그의 생활은 모시같이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같이 깨끗하고 차가웠다. 황진이처럼 멋있던 그는 죽은 남편을 위하여 기도와 고행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폭포 같은 마음을 지닌 채 호수같이 살려고 애를 쓰다가 바다로 가고야 말았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나는 그 후 외지로 돌아다니느라고 엄마의 무덤까지 잃어버렸다. 다행히 그의 사진이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삼십 시대에 세상을 떠난 그는 언제나 젊고 아름답다. 내가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엄마한테서 배운 웃음이다. 나는 엄마 아들답지 않은 때가 많으나 그래도 엄마의 아들이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나 아빠의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엄마와 나는 숨기내기를 잘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를 금방 찾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있어야 나를 찾아냈다. 나는 다락 속에 있는데, 엄마는 이방 저방 찾아다녔다. 다락을 열고 들여다보고서도 "여기도 없네" 하고 그냥 가버린다. 광에도 가보고 장독 뒤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하도 답답해서 소리를 내면 그제야 겨우 찾아냈다.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한번은 글방에서 몰래 도망왔다. 너무 이른 것 같아서 한 길을 좀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왔다. 내 생각으로는 그만하면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물었다. 어물어물했더니, 엄마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막 때린다. 나는 한나절이나 울다가 잠이 들었다. 자다 눈을 뜨니 엄마는 내 종아리를 만지면서 울고 있었다. 왜 엄마가 우는지 나는 몰랐다.
나는 글방에 가기 전부터 `추상화`를 그렸다. 엄마는 그 그림에 틀을 만들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추상화가 없을 때라,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아마 우리 엄마가 좀 돌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엄마는 새로 지은 옷을 내게 입혀보는 것을 참 기뻐하였다. 옷 입히는 동안 내가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고 야단이었다. 작년에 접어 넣었던 것을 다 내어도 길이가 작다고 좋아하였다. 그런데 내 키가 지금도 작은 것은 참 미안한 일이다.
밤이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에 내려가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두칠성을 찾아 북극성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행히 천문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그 후부터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는 나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나는 왕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쓰고 다니던 내가 왕자 같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 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인연>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이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의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셀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이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이 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가 하루에 한두 번씩 더웁고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 제 생일날 사주지 못한 빌로도 바지를 사주고, 아내에게는 비하이브 털실 한 폰드 반을 사주고 싶다. 그리고 내 것으로 점잖고 산뜻한 넥타이를 몇 개 사고 싶다. 돈이 없어서 적조하여진 친구들을 우리 집에 청해오고 싶다. 아내는 신이 나서 도마질을 할 것이다. 나는 오만 원, 아니 십만 원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는 생활을 가장 사랑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기운을 다 팔아버리지 않고, 나의 마지막 십분지 일이라도 남겨서 자유와 한가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나는 잔디를 밟기 좋아한다. 젖은 시새를 밟기 좋아한다. 고무창 댄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기를 좋아한다. 아가의 머리칼을 만지기 좋아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보드랍고 고운 화롯불 재를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남의 아내의 수달피 목도리를 만져보기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한다. 웃는 아름다운 얼굴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수수한 얼굴이 웃는 것도 좋아한다. 서영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바라보고 웃는 얼굴도 좋아한다. 나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아름다운 빛을 사랑한다. 골짜기마다 단풍이 찬란한 만폭동, 앞을 바라보며 걸음이 급하여지고 뒤를 돌아다보면 더 좋은 단풍을 두고 가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예전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주신 색종이 같은 빨간색, 보라, 자주, 초록, 이런 황홀한 색깔을 좋아한다. 나는 우리나라 가을 하늘을 사랑한다. 나는 진주빛 비둘기를 좋아한다. 나는 오래된 가구의 마호가니빛을 좋아한다. 늙어가는 학자의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좋아한다.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를 좋아하며, 꾀꼬리 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즐긴다.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를 좋아하며,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는 골목을 지나갈 때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젊은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없는 방 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 말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비 오시는 날 저녁때 뒷골목 선술집에서 풍기는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다. 새로운 양서 냄새, 털옷 냄새를 좋아한다. 커피 끓이는 냄새, 라일락 짙은 냄새, 국화, 수선화, 소나무의 향기를 좋아한다. 봄 흙 냄새를 좋아한다.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호도와 잣과 꿀을 좋아하고 친구와 향기로운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 군밤을 외투호주머니에다 넣고 길을 걸으면서 먹기를 좋아하고, 찰스 강변을 걸으면서 핥던 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나는 아홉 평 건물에 땅이 오십 평이나 되는 나의 집을 좋아한다. 재목은 쓰지 못하고 흙으로 진 집이지만 내 집이니까 좋아한다. 화초를 심을 뜰이 있고 집 내놓으라는 말을 아니 들을 터이니 좋다. 내 책들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을 수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집에서 살면 집을 몰라서 놀러오지 못할 친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아침에는 실크 해트를 쓰고 모닝을 입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여름이면 베고의 적삼을 입고 농립을 쓰고 짚신을 신고 산길을 가기 좋아한다.
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태사신, 이름 쓴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논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서영이>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탈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 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 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 하느라고 보냈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물론, 내 생애에 가장 행복된 부분이다. 내가 해외에 있던 일 년을 빼고는 유치원서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서영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왔다. 어쩌다 늦게 데리러 가는 때는 서영이는 어두운 운동장에서 혼자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것은 일 년 동안이나 서영이와 떨어져 살던 기억이다. 오는 도중에 동경에서 삼 일 간 체류할 예정이었으나, 견딜 수가 없어서 그날로 귀국했다. 그래서 비행장에는 마중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나는 택시에 짐을 싣고 곧장 학교로 갔다.
내가 서영이 아빠로서 미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내 생김생김이 늘씬하고 멋지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젊은 아빠가 아닌 것이 미안하다. 보수적인 점이 있기 때문 이다. 기대가 커서 그것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
서영이는 내 책상 위에 '아빠 몸조심'이라고 먹글씨로 예쁘게 써 붙였다. 하루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아빠 몸조심'이 '아빠 마음조심'으로 바뀌었다. 어떤 여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 무렵 서영이는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을 읽고 공책에다 '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아빠에게 애인이 생겼을 때'라고 써놓은 것을 보았다.
아무려나 서영이는 나의 방파제(防波堤)이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 하더라도 그는 능히 막아낼 수 있으며, 나의 마음속에 안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나는 '서영이도 결혼을 할 테지'하고 십 년이나 후의 일이지만 이 생각 저 생각 할 때가 있다.
딸이 결혼하는 것을 '남에게 준다', '치운다' 이런 따위의 관념은 몰인정하고 야속 하고 죄스러운 일이라 믿는다. 딸의 사진을 함부로 돌린다거나 상품을 내어보이듯이 선을 보인다거나 하는 짓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서 보내야겠는데 큰일 났어요. 어디 한군데 천거하십시오.'
이런 소리를 나에게 하는 사람의 얼굴을 나는 뻔히 쳐다본다.
결혼을 한 뒤라도 나는 내 딸이 남의 집 사람이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집살이는 아니 하고 독립한 가정을 이룰 것이며, 거기 에는 부부의 똑같은 의무와 권리가 있을 것이다. 아내도 새 집에 온 것이요, 남편도 새집 에 온 것이다. 남편의 집인 동시에 아내의 집이요, 아내의 집인 동시에 남편의 집이다.
결혼은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사랑은 억지로 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사람에 따라, 특히 천품이 있는 여자에 있어서 자기에게 충실하기 위하여 아니하는 것도 좋다.
자기의 학문. 예술. 종교 또는 다른 사명이 결혼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의의 있을 것이다. 결혼 생활이 지장을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퀴리 부인 같은 경우는 좋은 예라 하겠다. 여자의 결혼 연령은 이십대도 좋고 삼십대도 좋고, 그 이상 나이에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청춘이 짧다고 하지만 꽃같이 시들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었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고. 지금 나에게 이 축복 받은 겨울이 있다. 장래 결혼을 하면 서영이에게도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렇지 않으면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좋겠다.
그리고 다행히 내가 오래 살면 서영이 집 근처에서 살겠다. 아이 둘이 날마다 놀러 올 것이다.
나는 <파랑새> 이야기 도 하여주고 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의 엄마처럼 나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장기도 둘 것이다. 새로 나오는 잎새같이 보드라운 뺨을 만져보고 그 맑은 눈 속에서 나의 여생의 축복을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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