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수필방

老木을 우러러보며 / 한흑구

폴래폴래 2009. 6. 20. 18:31

 

 

                       老木을 우러러보며

 

- 한흑구

                                                                                                                          

 

 나는 오늘 보경사(寶鏡寺) 앞 뜰에 앉아서 하늘 높이 솟아오른 느티나무 노목 하나를 쳐다본다.

오백 년이나 넘어 살았다는 이 노목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모르는 듯이 상하좌우로 확 퍼져 올라섰다. 그러나, 지금 이 노목은 검푸른 그늘을 새파란 잔디 위에 드리우고 있지만, 그 다섯 세기의 길고 오랜 세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넓은 허공에 조그마한 한 점의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스럽기도 하다.

한때, 큰 번개에 맞아서 찢어졌다는 큰 가지 하나가 떨어져 나간 부분에는 크고 기다란 구멍이 뚫어져 있다.

이 늙은 나무 속에는 얼마나 많은 구멍들이 아래위로 뚫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보기에도 큰 구렁이들이 얼마든지 드나들기에 충분하다.

구렁이들이 살지 않는다면, 달밤마다 꿀밤을 주워먹는 다람쥐들이 몇 가족이라도 숨어서 살 수 있을 만하다.

달 밝은, 고요한 가을밤에 한 가락 실바람이 불어오면, 저 노목은 콧구멍도 입구멍도 아닌 저 큰 구멍으로 한 가락 신비로운 소리로 슬픈 노래라도 부를 것 같다.

‘나무는 늙어도 재목으로 쓰이지만, 사람은 늙어지면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이러한 말을 나는 들었다.

그러나 베이컨(Bacon)은 늙은 것, 오래 된 것을 좋다고 주장하였다.

 

Old wood best to burn, old wine to drink, old friends to trust, and old authors to read.

(고목은 불을 때기에 좋고, 오래 묵은 술은 마시기에 좋고, 오랜 친구는 믿을 수 있고, 노련한 작가는 읽을 만하다.)

 

이 말의 참뜻은, 시간의 흐름에서 오래도록 늙고 낡아진 것을 뜻함이 아니고, 그 오랜 시간을 시련과 곤고(困苦)에서 이겨나서 숙달되고, 노련해진 것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나는 묵묵히 앉아서 이 구멍이 뚫어지고, 가지들이 땅으로 쳐져서 한편으로 쓰러질 듯이 기우뚱한 큰 노목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본다.

구부러진 가는 가지마다가 얼마나 많은 비바람에 휘갈김을 견디어냈으며 얼마나 많은 찬 서리에 굵은 가지들이 울룩불룩한 가죽과 같은 껍데기로써 씌워졌을까.

어린 나무에게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 거칠고, 꽉꽉한 껍데기들은 이 늙은 나무의 괴로움과 슬픔의 정(情)이 솟구쳐 나와서 말라붙은 흔적이나 허물이 아닌지.

이러한 상념에 잠겨서, 나는 이 늙은 나무의 모양을 우러러보면서, 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더듬어 보기도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무를 좋아했다.

오월이면 꿀 냄새가 풍기는 아카시아꽃들을 따서 먹기를 좋아했다. 유월이면 꽃이 피는 밤나무 그늘 아래서 안서(岸曙)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와 주요한의 시집 『아름다운 새벽』을 몇 번이고 줄줄 외기도 했다.

버드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나의 이름 석 자를 칼로 새겨놓고, 그것이 해마다 나무와 함께 커가는 것을 보면서 기특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도 고향에 돌아가면 그 버드나무가 살아있을까, 육십이 넘은 오늘까지도 가끔 생각해 본다.

 

나무는 오랫동안 산다.

우리 나라에도 천 년이 넘은 노목거수(老木巨樹)가 있지만, 미국의 서북부에는 오천년이 넘는 노목이 많다는 것이 나무의 나이테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나무는 한곳에 가만히 서서도 오랜 세월을 살지만, 사람은 이곳저곳 떠다니면서 별별것을 다 찾아먹으면서도 백 년을 살기가 힘이 든다.

사람도 육십이 넘으면, 노목의 껍데기마냥 피부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손잔등은 거칠어지고, 검은 티들이 덮이고, 얼굴엔 검은 주근깨들과 검버섯들이 돋고, 어깨와 잔등에도 많은 주근깨와 반점이 덮인다.

그뿐인가. 폐를 앓았던 나의 허파에는 구멍이 뚫어졌던 곳도 있을 것이고, 지독한 파스와 아이나의 복용으로 위장은 헐고 나른해졌을 것이다.

저 노목은 그의 구멍 속으로 다람쥐들이 드나들어도 끄떡 없고, 소슬바람에는 신비스러운 음악 소리를 내고, 해가 쪼이는 뙤약볕에서는 서늘한 그늘을 덮어줄 수도 있지만 사람은 늙어서도 왜 그러한 신비력을 가질 수 있게 태어나지 못하였을까.

이제, 나의 몸 속에서 이름도 모를, 눈에도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나의 오장육부를 쑤시어 먹는 날에는, 나는 저 노목과 같이, 푸른 잎도, 가지도, 꽃도, 열매도 맺어보지 못하고 죽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다시 한 번 저 노목을 우러러본다.

시간의 흐름을 탓하고, 운명의 슬픔을 아프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나는 저 노목이 아무 말도 없이 높이 서있으면서, 다만, 그늘만을 잔디 위에 덮어주는 하나의 사명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죽고 저 노목도 언젠가는 다 죽어야 한다.

그러나 저 노목은 다 썩어서 구멍이 뚫리고, 다람쥐가 드나들어도, 그냥 속임수 하나도 없이 서늘한 그늘만 드리우는 사명 하나만을 갖고서도 저렇게 오래 살 수가 있다.

나는 일종의 외경심(畏敬心)마저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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