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밤의 산등성이 / 유홍준

폴래폴래 2009. 3. 8. 09:46

 

 

 

 

                                                  사진출처:네이버포토

 

 

            밤의 산등성이         / 유홍준 

 

 

 

 깔 것도 없이 차디찬 마룻바닥에 누워 바라보면

 깜깜한 밤에 나무들이 우쭐우쭐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게 보여

그 옛날 죽은 우리 마을 어른들이 올라가는 게 보여 꽹과리 치고

올라가는 게 보여 두런두런 올라가는 게 보여 햇불 들고 올라가는

게 보여

 이 산등성이에서 저 산등성이로

 

 소나무가 가고 떡갈나무가 가고 호두나무가 가고 말없이

 고라니가 가고 살쾡이가 가고 여우가 가고 오소리가 가고 말없

이 애달픔이 가고 고달픔이 가고 서글픔이 가고 말없이 구름이 가

고 안개가 가고 바람이 가고 말없이 이 산등성이에서 저 산등성이

 이 산등성이가 저 산등성이로

 굽이굽이 가고 구불텅구불텅 가고 말없이 오르막내리막 가고

허위허위 가고 말없이 되새김질 하는 짐승의

 눈망울 슬픈 짐승의

 잔등 같은 산등성이로 목덜미 같은 산등성이로

 초승달이 가고 보름달이 가고 아직 어린 내가 가고 아직 젊은

내가 가고 아직

 

 오지 않은 나마저도 가버려서 다 가버려서 말없이

 깜깜한 밤에

 깔 것도 없이 찬 바닥에 누워 바라보면 깜깜한 밤에

 

 

 

 

 

                    -   시작노트

 

             눈을 감고서야 겨우 읽을 수 있는 시가 있다.

             두 눈을 뜨고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시가 있다.

 

             늘 외롭고 심심했던 내 옛집 마루가 가르쳐준 어린 날의 서글픔들!

 

 

 

 

                     -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반시'등단.

                       시집<상가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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