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폴래폴래 2009. 3. 8. 23:49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時着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1960년 경기 연평 출생. 연세대 정외과.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9년 3월 7일 타계. 어제가 20주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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