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달을 우물에 씻고 싶다 / 민구
누가 벌써 우물에 달 담그고 소란인지
지워지지 않는 여러 겹 달들
맨살 비비며 우물을 채우고 있다
이마에 빛나는 달 문신을 한 여자
여자는 고기집에서 겹겹이 쌓인 그릇을 닦는다
밤새 갖은 양념을 한 물 속에 얼굴을 재우고
눈먼 짐승을 띄워 구멍난 하늘을 기우는 사람
우물로 이어지는 굴뚝
은밀한 잠망경에 매달려서 그녀를 지켜본다
들이치는 새들의 검은 그림자를 벗겨
그릴 위에 굽고 자르기를 몇 번일까
희번덕거리는 달의 기름이 물 위에 떠서
내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달 문신 금박테두리에
수면 위로 찰랑거리는 너의 머리칼이 빛난다
언젠가 잠든 노모의 머리를 쓸어
빠르게 흘러내리는 이마에 가드레일을 놓은 적이 있다
그릴 위의 날고기가 맹렬한 내열로 익을 때
녹아내리는 얼굴을 몇 개의 주름으로 고정하듯
달을 닮은 나의 그릇은 깨지지 않고
몇 가닥 실금만 뽑아내고 있다
그녀가 창밖의 나무 그림자를 끌어 이마를 닦는다
이마에 새긴 달을 지우는 사람
씻을수록 불어나는 신기한 그릇을
퇴근시간
머리 위의 구름이 베어 물고 지나간다
- 1983년 인천 출생.
명지대 문창과 4년 재학 중.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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