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후광 / 김선태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의 관심 속에서 빛이 나는 것인가.
오랜만에 뿌옇게 흐려진 거실 유리창 청소를 하다 문득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이 거느린 후광을 생각한다.
유리창을 닦으면 바깥 풍경이 잘 보이고, 마음을 닦으면 세상 이치가 환해지고, 너의 얼룩을 닦아주면 내가 빛나듯이
책받침도 문지르면 머리칼을 일으켜 세우고, 녹슨 쇠붙이도 문지르면 빛이 나고, 아무리 퇴색한 기억도 오래 문지르면 생생하게 되살아나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얼굴빛이 밝아지고, 아픈 마음을 쓰다듬으면 환하게 상처가 아물고, 돌멩이라도 쓰다듬으면 마음 열어 반짝반짝 대화를 걸어오듯이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 속에는
탁하고, 추하고,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걸어 나오는 환한 누군가가 있다.
많이 쓸수록 빛이 나는 이 말들은
세상을 다시 한번 태어나게 하는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다.
- 1960년 전남 강진 출생.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6년 '현대문학'추천.
현재, 목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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