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겨울
이병률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을까 여러번 기웃거렸다
누군가 다녀간 온기로 보아
어쩌면 둘이거나 셋이었을지도 모를 정겨운 흔적 역력하고
문이 그대로 잠긴 걸 보면
한번 왔다가 한번 갈 줄도 아는 이 분명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놓았다
누군가 내 집에서 불을 끄고 아닌 척 그 자리에 다시
얼음을 놓았다.
누군가 빈집에서 머리를 풀어 초를 켜고 문고리에 얼굴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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