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나비의 겨울 / 이병률

폴래폴래 2008. 10. 29. 10:26

 

 

     나비 겨울

                                       이병률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을까 여러번 기웃거렸다

 

누군가 다녀간 온기로 보아

어쩌면 둘이거나 셋이었을지도 모를 정겨운 흔적 역력하고

문이 그대로 잠긴 걸 보면

한번 왔다가 한번 갈 줄도 아는 이 분명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놓았다

누군가 내 집에서 불을 끄고 아닌 척 그 자리에 다시

얼음을 놓았다.

누군가 빈집에서 머리를 풀어 초를 켜고 문고리에 얼굴을 기댔다.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리 / 김종삼  (0) 2008.10.30
옆에 대하여 / 김행숙  (0) 2008.10.29
불탄 방 / 강정  (0) 2008.10.25
세상의 등뼈 / 정끝별  (0) 2008.10.25
우두커니 서 있는 / 전동균  (0) 200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