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풀씨창고 쉭쉭
이주송
멧돼지 한 마리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산기슭이 들어있다
노루발, 뻐국새,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벌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
멀리 가고 싶은 풀씨들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면 된다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
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낼 터
씨앗들은 직파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섬에는 국제종자보관창고가 있다
먼 훗날의 구호(救護)를 위해 멧돼지 한 마리
그 쉭쉭거리는 씨앗창고를 기르고 싶다
이 산과 저 산
이쪽 풀밭과 저쪽 풀밭이라는 말
다 멧돼지의 등짝에서 떨어진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나들이로 섞이는 산
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
멧돼지 꼬리에서 반딧불이 날아오르고
꺼칠한 오해 속에서도
극지에서도 풀씨들이 움튼다
이주송 :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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