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하라는 쉬
이담하
밝은 전구 아래서 오줌을 누다 보면
몸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입 밖에 없다면
귀가 가장 부끄럽다
쉬, 하는 소리는 몸의 부끄러움
전구가 나가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그때 귀는 얼마나 환한 밝기가 될까
귀와 눈의 역할을 바꾸어
내 귀로 내 몸의 부끄러운 소리를 듣는다
벌컥벌컥 마신 물
잠깐 동안의 우물도 비워질 때는
그 어떤 것을 내보내기 위해 문을 여는 것
소리 줄기가 빠져나가는 동안 부르르 떠는 쉬,
몸의 부끄러운 곳에서 나온다
그래서 귀가 가장 부끄럽다
부끄러움은 하나의 입, 할 말이 없다
몸의 가장 부끄러운 곳
말하는 입과 닮아서
입을 봉한다는 것은 소리를 가두는 것
입을 닫고 있을 때
조용히 하라는 소리가 몸속에 쌓여
일어날 때보다 앉을 때 조용히 하라는 쉬,
오줌을 누면서 눈과 귀를 떼어 놓는다
『포지션』2019년 가을호
1962년 강원 홍천 출생. 2011년『시사사』신인상 등단
2016년 한라일보 신춘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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