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나는 저 굳건하던 입술이 달아올라
부드러움과 딱딱함이 어지러이 뒤섞이는 것에 경탄한다
활 모양의 다리와 그 다리의 그림자 사이에 서성이면서
하늘과 물 사이, 일렁이는 수면과
거기 비치는 일그러진 하늘 그림자 사이에서
존재와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 일파만파로
그녀와 나의 존재와 운명이 확산되는 그 순간을
나는 기다려왔다
망설이지 말라, 아니다 망설여라
새삼스럽게도 나는 지금
내가 육체의 영혼임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니다, 감출 수 없는 몸이 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이끌리리라
처음에는 그녀의 두 눈 사이
영혼이 스며나올 것만 같은 곳
그 언저리 어느 허공에서 나의 시선이 흔들린다
영원히 빛을 잃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처럼 멍한 눈길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제 막 조용히 잠들려는 듯이 무심한
그녀의 어깨 위에서 나는 절망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입술이여
너는 퍼덕이는 생명의 증인으로 살아 있다
그리고 지금, 떨리는 눈썹 아래 빛나는 눈동자가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얼굴을 뚫고 나가 상대방 뒤통수 쪽 먼 곳 어딘가를
또렷이 보려는 것처럼, 들여다본다
아, 그리고 거기, 번개처럼 빠르게 마주쳤던 시선이 이내
열에 녹아내린 듯이 얽혀버린다
순간순간의 탄식을 헤치고 나아가
서로의 등을 아금박스럽고도 산뜻하게
움켜쥐고 쓰다듬는 손처럼
얽혀버린다, 우주의 끝날까지
부둥켜안은 화석이어야만 하는 것처럼
시집『아직은 나도 모른다』창비 2005
1954년 전북 익산 출생. 1975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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