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동굴
이어진
장미 꽃잎 속에서 먼 초원의 우물을 만날 수 있다면
하늘이 겹겹이 쌓인 손바닥을
살 속 깊이 넣어둔 치명적인 입술을
검은 꽃잎을 닮은 고양이의 눈동자를
뿌리에서 줄기까지의 거리를 달려 나가는 물의 혓바닥을
공중에 피워올리는 꽃송이의 맨발을
내면을 돌아다니는 구름의 발자국을
사자의 갈기로 붉은 담을 뛰어다닌다는데
담 위를 번져나가는 장미의 넝쿨들
깊은 우물에서 저 먼 별까지의 거리를 돌아
난폭한 폭설을 견뎠던 광장의 얼굴 위에
꽃잎 속에서 아직 소녀인 나를 만난다면
조그만 손으로 일기를 쓰고 있는 여태 소년인 당신을 만난다면
뿌리에서 꽃잎까지의 팔뚝에 가시를 뻗어올리는
아름다운 장미의 후예에 대해서는 침묵하리라
나는, 장미의 노래를 부르는 초원, 그 광장 위의 말발굽
발굽에서 떨어지는 바람의 뜀박질
꽃잎에서 저 먼 달(月)까지의 허공 위를
수없이 달려갔다 돌아 온 눈송이
그러나 지금은 우물 속에 잠든, 수없이 많은 꽃잎들
『발견』2019년 여름호
1964년 서울 출생. 2015년『시인동네』로 등단. 디지털 작은 시집
<셔츠의 웃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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