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포옹의 방식 / 권현형

폴래폴래 2019. 6. 12. 15:20




           포옹의 방식



                           권현형


 이윽고 뜨거움이 재가 될 때까지

 그들 머리 위 자귀나무는 바람 불지 않는

 저녁의 골목을 흔들 것이다

 골목 주택가의 닫힌 철문 앞에서

 닫힌 시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껴안고 서 있다


 사이를 떼어놓을 수 없는 부동의 석고상처럼 보이지만

 여자의 등 뒤에 두르고 있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물려 있다

 연인과 무관하게

 철학자처럼 건달처럼 사색하며 거닐며 타오르며


 그가 포옹에 몰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뇌관이 터질 지경으로 달리는

 팽창하는 여자의 등, 순정한 척추의 비탈이 보인다

 매끈한 생머리의 가닥을 묶은 노랑 고무줄 때문인지


 여자는 단거리 마라토너로도 보인다

 남자의 분열된 손가락을 담배를 볼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은 옮길 수 없는 섬 같다


 가령 사랑을 나눌 때 티브이를 켜놓은 적 있다면,

 껌을 씹은 적 있다면, 당신의 패牌는 경멸이다




 시집『포옹의 방식』2013년 문예중앙



 강원도 주문진 출생. 경희대 대학원 문학박사. 1995년<시와시학>등단

 시집<중독성 슬픔><밥이나 먹자, 꽃아> 등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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