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파과 / 강연호

폴래폴래 2019. 5. 31. 11:19




       파과


                               강연호



 아이는 자주 아픈 척했다

 배가 아파,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은 거다

 다리가 저려, 태권도가 지겨운 거다

 아픈 척하는 아픔을

 그래 그래, 다 들어주며

 같이 아픈 척 표정을 만들어

 기어이 영어 수학 재능교실에 다 보냈다

 결국 이기는 게 이기는 거다


 아이는 이제 제 방문을 걸어 감그고

 무슨 여권이나 비자

 출입허가증 같은 것을 요구한다

 세상은 그리 괜찮은 곳이 아니란다

 외롭겠지만

 걸어 잠그는 버릇은 잘 들여놨으니 됐다

 둥둥 떠다니는 유빙에 갇힌 북극곰

 열렬한 침묵 열렬한 소극 열렬한 내성

 파과에도 폭력도 반항도

 남근주의도 있지만

 결국 서글퍼지는 오후도 있단다


 어서 세상을 너끈히 가늠하는 나이가 되었으면

 아니 조금만 더디 자랐으면

 마음이 뒤섞이는 저녁

 언젠가는 너도 외롭겠지만



 파과* : 파과지년(破瓜之年)



 『시인동네』2019년 4월호



 1962년 대전 출생. 1991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비단길><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기억의 못갖춘마디>

 원광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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