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복수는 나의 것 / 이현승

폴래폴래 2019. 4. 21. 13:34




        복수는 나의 것



                            이현승


 싸우다가 정 안 되면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쇠가 노로 들어가 쇳물이 되듯

 녹아 하나가 되는 수밖에 없다.


 끓는 용광로의 그 불구덩이에 대고

 활을 쏘거나 칼을 꽂듯

 사랑하면서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복수다.


 강에 떨어진 비는 강물이 되고

 노에 뛰어든 쇠는 쇳물이 되지만


 달랑 제 몸 하나를 끓는 쇳물에 내던지는 일이

 쇠에게는 가장 뜨거운 일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복수다.


 사랑하다 정 안 되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힘으로 싸우고

 싸우는 힘으로 죽고


 죽을 힘을 다해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빗방울들이 난타하는 수면을 본다.

 넘칠 듯 들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를 길 없이 들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정시학』2018년가을호




 -2002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생활이라는 생각> 올해의 젊은 시인상,

 김달진 문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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