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이현승
싸우다가 정 안 되면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쇠가 노로 들어가 쇳물이 되듯
녹아 하나가 되는 수밖에 없다.
끓는 용광로의 그 불구덩이에 대고
활을 쏘거나 칼을 꽂듯
사랑하면서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복수다.
강에 떨어진 비는 강물이 되고
노에 뛰어든 쇠는 쇳물이 되지만
달랑 제 몸 하나를 끓는 쇳물에 내던지는 일이
쇠에게는 가장 뜨거운 일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복수다.
사랑하다 정 안 되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힘으로 싸우고
싸우는 힘으로 죽고
죽을 힘을 다해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빗방울들이 난타하는 수면을 본다.
넘칠 듯 들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를 길 없이 들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정시학』2018년가을호
-2002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생활이라는 생각> 올해의 젊은 시인상,
김달진 문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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