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빈센트 / 박연준

폴래폴래 2019. 4. 20. 14:30




              빈센트



                              박연준


 미쳐 죽게 해주세요

 날뛰다가 모가지가 뒤틀려

 죽음이 꾸역꾸역 밀려오게 해주세요

 온몸 구석구석에서 펌프처럼

 피의 줄기가 터져나오게,

 내 모든 시간과 기록이 소진되도록

 하염없이 죄를 지으며,

 죄에 깔려 죽을지라도

 뱀을, 보내주세요

 시커멓고 차가운, 거대한 뱀

 (미끄러운 발작!)

 뱀의 입속에 난 두 갈래 길에

 다리를 한 짝씩 올려놓게 해주세요

 길이 달리면 다리가 찢어지고

 내가 두 개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의 나는 빨갛게

 또하나의 나는 검게 해주세요

 둘이 서로 침 뱉다가

 영영 돌아서서 딴 길 가게 해주세요


       죽도록,


               붓을 들고 있고 싶어요


 시앤, 뱃속이 텅 비어

 벙어리가 된 시앤

 네 썩은 입술 사이로

 꽃잎이 진다

 봄이 와서 급성으로 죽음에 이르는




 시집『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문학동네2012년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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