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박연준
미쳐 죽게 해주세요
날뛰다가 모가지가 뒤틀려
죽음이 꾸역꾸역 밀려오게 해주세요
온몸 구석구석에서 펌프처럼
피의 줄기가 터져나오게,
내 모든 시간과 기록이 소진되도록
하염없이 죄를 지으며,
죄에 깔려 죽을지라도
뱀을, 보내주세요
시커멓고 차가운, 거대한 뱀
(미끄러운 발작!)
뱀의 입속에 난 두 갈래 길에
다리를 한 짝씩 올려놓게 해주세요
길이 달리면 다리가 찢어지고
내가 두 개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의 나는 빨갛게
또하나의 나는 검게 해주세요
둘이 서로 침 뱉다가
영영 돌아서서 딴 길 가게 해주세요
죽도록,
붓을 들고 있고 싶어요
시앤, 뱃속이 텅 비어
벙어리가 된 시앤
네 썩은 입술 사이로
꽃잎이 진다
봄이 와서 급성으로 죽음에 이르는
시집『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문학동네2012년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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