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비닐 막을 뚫고 가는 무딘 손가락처럼
-신철규
갑자기 사위가 어둑해진다
구름의 뒤꿈치가 갈라지고
먹줄 같은 빗줄기가 내려온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풍경을 일그러뜨린다
우산을 꼭 움켜진 사람들
우산 속에 가려진 얼굴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지그재그로 뛰어가는 사람들
가로수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제 뿌리를 뽑으려 몸부림친다
비를 맞으면 이상하게도 고개가 앞으로 숙여진다
눈썹에 걸려 있는 물방울들
유리창에 붙은 검은 플라타나스 이파리
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다
숨이 가쁜 듯 파닥거린다
갑작스런 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등을 돌린 채
커피숍을 에워싼다 유리창이
식은땀을 흘린다
일본의 우키요에에 나오는 우산은 평평하다
우산은 언제부터 방추형으로 만들어졌을까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최소한의 비를 맞기 위해
아래로 굴곡진 우산 위로 빗방울이 흘러내린다
하나하나 미끄럼틀을 탄다
새 한 마리가 빗속을 뚫고 날아간다
투두둑
얇은 비닐 막을 뚫고 가는 무딘 손가락처럼
아주 연약한 거미줄에도 물방울은 맺힌다
시전문 계간지『발견』2018년 봄호
-1980년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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