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오후
- 박정만
눈물이 흔해서 괴로웠다.
날 기울면 창밖에 어둠이 지고
어둠이 지고 나면 때없이
눈물이 소금처럼 밀려왔다, 소금처럼.
거룩하고 거룩한 세월,
한 목숨 견디지 못하고 매양 눈물이 오고
어느 때쯤이었을까,
죄와 불면이 무섭게 자라나는 어두운 밤에
나는 슬픔의 그물로 피륙을 짰다.
아주 잘 짰다.
옷에는 물방울 무늬의 사랑이 저질러지고
때묻은 내의에는 마구 서캐가 슬어
내 더러운 피의 근원을 앞질러갔다.
이제 사랑도 알아보게 축(縮)이 났다.
마음은 건성 마른 풀잎에 눕고
내 생의 우기를 재촉하는 바람만 불어
초로(草露) 같은 한 목숨을 쓰러뜨렸다.
돌림병처럼 어지러운 세상,
세상은 때없이 오후의 햇발 속에 기울어지고
나는 눈물이 둥그러운 기름처럼
어지럽게 맨땅을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요즈음은 왜 이렇게 눈물이 흔한지 몰라.
시집『혼자 있는 봄날』나남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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