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눈물의 오후 / 박정만

폴래폴래 2015. 4. 29. 12:33

 

 

 

 

 

 

   눈물의 오후

 

                                                - 박정만

 

  눈물이 흔해서 괴로웠다.

  날 기울면 창밖에 어둠이 지고

  어둠이 지고 나면 때없이

  눈물이 소금처럼 밀려왔다, 소금처럼.

 

  거룩하고 거룩한 세월,

  한 목숨 견디지 못하고 매양 눈물이 오고

  어느 때쯤이었을까,

  죄와 불면이 무섭게 자라나는 어두운 밤에

  나는 슬픔의 그물로 피륙을 짰다.

 

  아주 잘 짰다.

  옷에는 물방울 무늬의 사랑이 저질러지고

  때묻은 내의에는 마구 서캐가 슬어

  내 더러운 피의 근원을 앞질러갔다.

 

  이제 사랑도 알아보게 축(縮)이 났다.

  마음은 건성 마른 풀잎에 눕고

  내 생의 우기를 재촉하는 바람만 불어

  초로(草露) 같은 한 목숨을 쓰러뜨렸다.

 

  돌림병처럼 어지러운 세상,

  세상은 때없이 오후의 햇발 속에 기울어지고

  나는 눈물이 둥그러운 기름처럼

  어지럽게 맨땅을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요즈음은 왜 이렇게 눈물이 흔한지 몰라.

 

 

 

  시집『혼자 있는 봄날』나남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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