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달의 귀 / 김륭

폴래폴래 2014. 3. 18. 10:41

 

 

 

 

사진:네이버포토

 

 

 

  달의 귀

 

 

                                   - 김륭

 

 

  가끔씩 귀를 자르고 싶어, 내 몸을 돌던 피가

  네모반듯하게 누울 수 있도록

 

  그러면 우리 집 고양이는 온통 벽을 긁어놓겠지만 혀를 붓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의 배 속에서 지워진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고 가

만히 첫눈이 온다고 속삭이는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심장을 꺼내 뭇

남자의 무릎을 베기도 한다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자궁을 들어낸 어머니 배 속 가득 담겨있던

  신발 한 짝이었음을 기억해냅니다

 

  달의 귀를 잘라 마르지 않는 그녀의 우물은 누군가의 손목을 베개로 삼아

야 들을 수 있는 노래, 우두커니 아무리 울어도 나무가 될 수 없는 나는 축축

한밤의 옆구리에 의자를 갖다놓는 나는 달팽이,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쩌죠? 귀를 잘라버린 무덤은 허공에 입을 그려 넣고

  그녀는 밤새 눈사람을 만들지만 더 이상

  무릎은 벨 수 없다더군요

 

  어머니, 나뭇잎 좀 그만 떨어뜨리세요

  배 속에서 우는 아이의 심장을 가만히 꺼내

  늙은 고양이를 만드는 그녀를 위해

  밤은 가끔씩 종이가 됩니다

 

 

 

 『서정시학』2014년 봄호

 

 

 

  -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동시집<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시집<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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