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키스
- 권현형
간현협곡에선 종잇장 얇은 생을 안고
옛 노래책에 나오는 사슴이 백척간두를 오르고 있다
다 저녁에 무리 지어 암벽등반을 하고 있다
높은 장대를 신고 상수리나무
숲 속으로 막 자국을 남긴 한 걸음이 떨린다
골짜기가 흔들린다 절벽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혁명가를 부르다 오지 않은 혁명 때문이 아니라
지나간 첫사랑 때문에 운다
막걸리 주전자 뚜껑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운다
두 연인이 쉼 없이 키스를 나눌 때마다
두 나무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서로의 환영에 사로잡힌 밤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운명적으로
가파르게 흔들린다
시집『포옹의 방식』문예중앙 2013
-강원도 주문진 출생. 경희대 대학원 문학박사.
1995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중독성 슬픔><밥이나 먹자, 꽃아>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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